[컬처박스] 통렬한 자기풍자로 세상에 돌직구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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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8월 9일 07시 00분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자로 알려진 시인 류근이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통렬한 자기풍자로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사진제공|웅진문학임프린트 곰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자로 알려진 시인 류근이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통렬한 자기풍자로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사진제공|웅진문학임프린트 곰
■ 시인 류근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 작사자로 유명
등단 후 술주정뱅이·자산가 등 굴곡의 삶
푸근한 ‘시’ 정신으로 세상 아픔 끌어안아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 눈물 나누나 / (중략) / 이젠 우리 다시는 /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 못 다한 사랑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고(故)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절창, 그 자체다. 가슴을 파내는 울림이다. 옛사랑이 그리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부적이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선율은 차마 두 눈을 뜨고선 들을 수가 없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윗 눈꺼풀은 아래 눈꺼풀과 한 몸이 된다. 한번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않건만 마음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튼 ‘그녀’가 그리워 몸부림친다. 기타의 울림은 물론 최고의 악기인 ‘김광석표 목소리’의 떨림에 눈물이 저절로 뚝.뚝. 떨어진다.

노래 못지않게 노랫말 또한 심금을 울리는 마약이다. 연애시의 절정이다. 경험담이 아니고선, 그리하여 수백 수천 일 동안 가슴앓이를 하지 않고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애끓음이다. 누굴까,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릴케의 시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중) 우리에게로 와 가슴을 저미게 하는 저 노랫말을 쓴 사람은. …류근이었다.

시인 류근. 천재라는 소문과 술주정뱅이라는 소문이 뒤엉켜 급기야는 미치광이라는 말까지 떠돌게 한 미스터리 시인. 혹자는 ‘이상의 광기와 도취, 기형도의 서정과 성찰, 함민복의 상처와 눈물이 이종교배되어 탄생한 낭만주의자’라고 했다. 휴대전화 벨소리 다운로드 사업에 뛰어들어 수십억을 번 자산가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비렁뱅이라는 소문도 따라 다녔다. 도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요? 결론부터 말하면 풍문은 모두 사실이다. 천재, 자산가, 비렁뱅이, 술주정뱅이 등등 모두 그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가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뒤 18년 만에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을 냈을 때 많은 시인들이 그 내공에 몸서리쳤다고 한다. 그는 등단 후 대기업 홍보실에 다니다 ‘시를 배운 사람이 거짓말하는 일은 못하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홀연히 인도로 떠났다. 5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강원도 횡성에 귀농해 고추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연간 40만원이라는 ‘쥐꼬리’ 매출에 두 손 들고 ‘속세’로 컴백했다. 그리곤 어찌어찌하여 전업 시인으로서 세상의 낮은 곳에서 ‘시와 시인의 세상’을 꿈꾸며 살고 있다. 아니 살고 있단다.


‘독작’ ‘폭설’ ‘그리운 우체국’ 등 주옥같은 시들을 배설한 그가 이번엔 황막한 세상에 죽비처럼 던지는 이야기를 펴냈다.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류근 지음·웅진문학임프린트 곰 펴냄)’가 그것이다. 말이 산문이지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시다. 그는 자신을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 자칭하지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견딤’이며 자신이 소멸될 때까지 그 ‘견딤’은 지속돼야 한다고 믿는다. 문장도 수려하지만 글 마무리에 ‘시바’와 ‘조낸’이라고 욕하듯 내뱉는 말이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들린다. 책에는 온통 ‘폐인 류근’의 모습만 보이지만 한 꺼풀, 또 한 꺼풀 벗기다 보면 ‘시인 류근’의 마음이 보인다.

또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동네 사람들의 재미난 에피소드도 글을 읽는 재미를 한껏 높인다. 이를테면 ‘소금장수’ 박후기 시인이나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 황종권 시인, 노래방에서 18번 먼저 부르기 경쟁을 벌였던 소설가 이윤기 등등이 그 것이다.

그의 글을 읽은 소설가 이외수 씨는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라며 무릎을 턱 치더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라며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또 이어령 전 장관은 “호젓한 심사로 개인의 미적 취향이나 기호를 토로하거나 인생의 교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엎드려 아파하고 끙끙 앓는 품이 매우 견결하고 순정하게 느껴진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시인이 살지 않는 육신은 버림받은 곳’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시인처럼 시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 피를 토하며 살아가는 시인의 삶을 보면 ‘조낸’ 먹먹해지기도 한다. 에잇, 종로빈대떡 구석진 창가에 홀로 쭈그리고 앉아 이어폰 볼륨을 한껏 올려놓고 김광석 아니 류근의 ‘너무 아픈 사랑…’이나 들으며 막걸리 한 잔 기울여야겠다. 느닷없이 소나기라도 내려 작은 창을 때려준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텐데….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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