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이 무반주 소나타 연습하며 슬럼프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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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심준호, 10세때부터 첼로의 바다에 풍덩
16일 예술의전당서 독주회

첼리스트 심준호는 젊은 연주자 중 드물게 팬 카페가 있다. 1년 전 20여 명으로 시작한 팬 카페 회원이 현재 170명으로 늘어났다. 카페 회원 중 건축가 이세호 씨가 경기 화성시 우음도에 그를 데리고 가 촬영한 사진이다. 오푸스 제공
첼리스트 심준호는 젊은 연주자 중 드물게 팬 카페가 있다. 1년 전 20여 명으로 시작한 팬 카페 회원이 현재 170명으로 늘어났다. 카페 회원 중 건축가 이세호 씨가 경기 화성시 우음도에 그를 데리고 가 촬영한 사진이다. 오푸스 제공
지난달 21일 열기가 대단한 밤이었다. 집에서 한창 연습에 빠져 있던 첼리스트 심준호(26)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작곡가 류재준(43)이었다. “준호야, 악기 들고 와라.” 시계를 보니 오후 11시. 심준호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서울 도곡동 율하우스로 갔다.

류재준과 하우스콘서트(하콘)를 이끄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박창수, 하콘 스태프, 류재준의 제자, 이렇게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심준호는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3악장을 연주했다. 그러고 딱 1주일 뒤인 28일 실력과 함께 심성 좋은 연주자를 까다롭게 고르기로 소문난 하콘 무대에 섰다.

금호 영재 출신인 심준호는 2010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주네스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음악계에서 그를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진중한 젊은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창수는 그를 두고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하루 10시간씩도 파고든다”면서 “심지가 굳고 잔꾀 부리지 않는 친구”라고 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심준호의 어머니는 첼로 반주를 주로 했다. 꼬마 준호는 큰 자를 들고 첼로 켜는 흉내를 내면서 놀았다. 손끝에 닿는 피아노의 건반은 차가웠고, 왼쪽 어깨에 얹는 바이올린은 소리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껴안듯 하는 첼로는 따스했고 온몸으로 소리가 느껴졌다고.

초등학교 2학년 첼로를 막 시작했을 무렵, 한 음악캠프에서 첼리스트 조영창이 연주하는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수석으로 들어간 서울예고의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조영창이 있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주변에서는 “독일 유학까지 가서 왜 굳이 한국인 선생님에게 배우느냐”고 했지만 그것이 고교생 심준호의 목표였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독일 음대 예비과정을 거쳐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에서 조영창을 사사했다.

2010년 심준호에게 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연주 실력이 늘지도 않는 것 같고 매일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었다.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왜 이럴까요?” 조영창이 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닦고 학교 가듯이 연습해서 그렇다.”

시들시들한 정신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스승은 여행을 가든지 정말 어려운 곡에 도전해 보든지 하라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첼로의 거의 모든 기교가 다 나온다는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연습을 거듭하면서 끝이 없어 보이던 구덩이에서 벗어났다.

심준호는 지난 3년간 아껴놓은 이 작품을 처음으로 무대에서 연주한다. 1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여는 리사이틀에서다. 2만∼3만 원. 1544-5142

이번 독주회는 작곡가 류재준이 주목할 만한 연주자를 엄선해 선보이는 ‘오푸스 비르투오소 시리즈’의 하나로 마련됐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2번과 더불어 류재준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한국 초연한다. 베토벤은 심준호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다.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그려준 베토벤 초상화가 그의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덕희가 쓴 ‘왜 베토벤인가’도 요즘 읽고 있다.

류재준은 이 진중한 젊은 연주자를 위한 피아니스트로 허원숙(55)을 선택했다. 30세가량 나이 차이가 나는 이런 조합은 요즘 국내 연주회에서 보기 드물다. 이들은 이미 하콘에서 빼어난 앙상블로 호평을 받았다.

심준호는 지난해부터 노르웨이 음악원으로 옮겨 첼로 거장 트룰스 뫼르크를 사사하고 있다. 음악에만 완전히 초점을 맞춘 독일과 달리 오슬로에서 태극권, 알렉산더 테크닉(명상적인 춤 수련법)을 함께 배우며 첼로의 새로운 면모를 탐구하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류재준#심준호#첼리스트#독주회#허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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