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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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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일감나누기로 부활의 날개 편 소규모 광고대행사 크리에이티브에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본사에서 크리에이티브에어 직원들이 회사의 재도약을 다짐하며 밝게 웃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본사에서 크리에이티브에어 직원들이 회사의 재도약을 다짐하며 밝게 웃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해 5월 어느 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크리에이티브에어 본사는 온통 눈물바다였다. 한승민(49) 윤수영 공동대표(48·여)는 친동생 같은 직원 18명을 한 명씩 회의실로 불렀다. 누가 떠나고, 누가 남을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직원들의 의사를 묻기 위해서였다.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던 두 사람도 서럽게 우는 직원들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날 직원 7명이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뒤 3명이 더 짐을 쌌다. 그로부터 14개월이 지난 지난달 24일 크리에이티브에어의 전 직원이 회사 인근 고깃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이미지 광고 수주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직원들 사이에서 “나갔던 동료들을 다시 불러오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제 살을 도려내듯 떠나보낸 동료들이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일감이 생겼으니 그 친구들을 다시 불러와야죠.”(한 대표)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본사에서 만난 한승민 크리에이티브에어 대표는 “현대자동차그룹 광고수주로 회사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본사에서 만난 한승민 크리에이티브에어 대표는 “현대자동차그룹 광고수주로 회사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크리에이티브에어는 2004년 외국계 광고대행사인 TBWA코리아에서 한솥밥을 먹던 한 대표와 윤 대표 등 4명이 설립한 독립광고회사다. 설립 초기엔 그야말로 ‘잘나가는’ 회사였다. LG전자와 아모레퍼시픽의 광고를 만들었고, SK텔레콤 캠페인도 진행했다. 회사 규모는 작아도 직원들은 어깨를 펴고 다녔다. 2007년 광고 수주액은 800억 원에 이르렀고, 직원도 33명으로 늘었다.

문제는 ‘지속성’이었다. 크리에이티브에어의 창의력을 높이 샀던 대기업들은 2, 3년이 지나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일감을 주지 않았다. 글로벌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2008년 광고 수주액은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공동 창업자 2명도 회사를 떠났다. 2011년 가장 큰 고객사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광고를 중단했다. 직격탄이었다.

지난해 5월의 구조조정은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한 대표는 “대기업광고계열회사에 일감이 쏠리니, 인력 쏠림현상도 심해졌다”며 “이는 다시 중소업체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반복됐고 우리도 그 희생양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던 가운데 올해 4월 현대차그룹이 계열사인 이노션이 맡던 광고 일감 중 1200억 원어치를 외부업체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은 광고업계 전체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도약의 기회였다.

5월 기아자동차의 ‘스포티지R’ TV 광고 프로젝트는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좌절을 딛고 다시 도전한 것이 6월 공고가 난 80억 원 규모의 현대차그룹 이미지 광고였다. 사실 국내에서 그룹 이미지 광고가 경쟁 입찰에 부쳐지는 경우는 드물다.

크리에이티브에어는 지난달 2일 서류심사를 통과한 뒤 보름 동안 전력을 다했다. 대표부터 말단 사원까지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또 모았다. 17일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열린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24일.

“이번 광고는 크리에이티브에어에 맡기기로 했습니다.”(현대차그룹 관계자)

“아, 그러세요?”(한 대표)

“왜 안 놀라세요?”(현대차그룹 관계자)

놀라지 않은 게 아니었다. 너무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었다. 함께 경쟁한 업체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계열 광고사였다.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벽이 너무 높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크리에이티브에어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 한 대표는 “우리가 잘해야 광고주들이 다른 중소 광고업체들에도 일을 믿고 맡길 테니 책임감 또한 크다”고 말했다. 크리에이티브에어는 광고회사 ‘웰콤’의 유제상 전 대표(50)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광고대행사#크리에이티브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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