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맺은 韓獨우정, 도나우 강가에 아름다운 음악돼 흐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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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동독 출신 라이너 쿤체 시인 팔순 기념, 서울대 출신 연주단 현지서 ‘국악 콘서트’

라이너 쿤체 시인(왼쪽)은 전영애 교수의 요청으로 2005년 방한해 서울대생들을 위한 작은 시낭송회를 했다. 사진은 방한 당시 서울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전 교수와 함께 찍은 것. 전영애 교수 제공
라이너 쿤체 시인(왼쪽)은 전영애 교수의 요청으로 2005년 방한해 서울대생들을 위한 작은 시낭송회를 했다. 사진은 방한 당시 서울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전 교수와 함께 찍은 것. 전영애 교수 제공
《시(詩)로 맺은 인연이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도나우 강가에 울려 퍼진다. 동독 출신의 저항시인이자 서정시인 라이너 쿤체의 팔순을 맞아 서울대 교수들과 졸업생들이 쿤체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독일에서 작은 보은(報恩) 연주회를 연다. 1933년 옛 동독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쿤체는 시인이 된 뒤 어린이의 군사화를 비판한 ‘참 아름다운 날들’이란 산문집을 발표해 반체제 시인으로 낙인찍혔다. 1977년 서독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독일 최고 권위의 게오르크 뷔히너 상과 횔덜린 문학상을 수상했다.》

쿤체 시인과 서울대 사람들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 문학재단이 쿤체 시인을 두 차례 초청했으나 시인은 유난 떨기 싫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쿤체 시인의 시집 3권과 산문집 1권을 번역한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학생들이 시인의 시 낭송을 꼭 듣고 싶어한다”고 전하자 시인 부부는 자비를 들여 그해 10월 일주일간 방한했다.

특히 서울대에서 열린 시 낭독회에선 길게 줄을 선 학생들에게 1시간 넘게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고 이런 저런 시구를 적어주었다. 정몽주, 황진이, 이이의 시에 감명 받은 그는 2007년 출간한 시집 ‘보리수의 밤’에서 ‘한 분단국을 위한 씁쓸한 시조’ ‘서울의 선교’ 등 한국 관련 시 12편을 발표했다.

독일 남쪽 파사우의 도나우 강가에 있는 라이너 쿤체 시인의 자택 뜰에 세워진 한옥 정자. 전영애 교수가 쿤체 시인에게 선물한 것으로, 집필실 겸 세미나실로 사용된다. 라이너 앤드 엘리자베트 쿤체 재단 제공
독일 남쪽 파사우의 도나우 강가에 있는 라이너 쿤체 시인의 자택 뜰에 세워진 한옥 정자. 전영애 교수가 쿤체 시인에게 선물한 것으로, 집필실 겸 세미나실로 사용된다. 라이너 앤드 엘리자베트 쿤체 재단 제공
지난해 4월 전 교수는 독일 바이에른 주 파사우의 도나우 강가에 있는 쿤체 시인의 자택 뜰에 한옥 정자를 지어 선물했다. 정자 곁에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전선영 작가가 만든 시비를 세웠다. 시비에는 쿤체 시인이 정몽주를 소재로 쓴 시 ‘옛 문체로 쓴 한국의 옛날 일’과 함께 “나의 한국 친구들에게 육백년 전 정몽주의 꼿꼿한 ‘바른 걸음’을 기리며”라는 메시지를 독일어와 한국어로 나란히 새겼다.

한편 2006년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임용된 작곡가 겸 전자음악 연주가 롤란트 브라이텐펠트 교수도 동독 출신으로 쿤체 시인의 팬이었다. 브라이텐펠트 교수는 틈틈이 쿤체 시인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곡을 작곡했다. 서울대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브라이텐펠트 교수와 전 교수는 서로 쿤체 시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가까워졌다.

브라이텐펠트 교수는 2011년 김승근 서울대 국악과 교수와 함께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한국 음악을 소개하는 공연을 하다 2년 뒤 쿤체 시인의 팔순과 한독 수교 130주년이 겹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독일 지방자치단체, 은행, 음악출판사가 후원에 나섰다. 공연은 7일 오후(현지 시간) 프라이부르크의 엘리자베트 슈나이더 재단 내 소극장, 9일 오후 쿤체 시인의 자택 근처 오베른첼 성에서 열린다. 김 교수가 이끄는 코리안 뮤직 프로젝트의 서울대 출신 국악 연주자 4명, 독일 현지의 연주자 6명이 무대에 오른다.

김 교수는 “‘한 잔 재스민 차에의 초대’ 등 쿤체 시인의 시에 영감을 받아 창작된 곡들 위주로 연주하고 한국어와 독일어로 시 낭송도 어우러진다”며 “가야금 대금 해금 장구 등 한국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가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쿤체 시인의 팔순을 기념해 천년만년 장수를 기원하는 조선시대 아악곡 ‘천년만세’도 연주한다.

방학을 맞아 프라이부르크대 고등연구원으로 있는 전영애 교수도 참석해 축사를 한다. 전 교수는 “누가 ‘세상에 아직 시인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이 쿤체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깊은 인식과 예리한 시각, 삶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흐른다”며 “이번 공연은 6월 대홍수로 피해를 겪은 파사우 주민을 위로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국악#쿤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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