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광원들, 정유공장서 석탄 200t을 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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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공장은 평소에는 그야말로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가끔씩 관리직원이 시설을 둘러보긴 하지만 대부분 자동제어시스템으로 조종된다. 그러나 ‘턴 어라운드’ 기간이 되면 흡사 건설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공장 전체가 어지러워진다. 2일 울산 울주군 에쓰오일 온산공장의 중질유분해시설 앞에서 트럭과 지게차들이 건설 폐기물을 쉴 새 없이 밖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에쓰오일 제공
정유공장은 평소에는 그야말로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가끔씩 관리직원이 시설을 둘러보긴 하지만 대부분 자동제어시스템으로 조종된다. 그러나 ‘턴 어라운드’ 기간이 되면 흡사 건설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공장 전체가 어지러워진다. 2일 울산 울주군 에쓰오일 온산공장의 중질유분해시설 앞에서 트럭과 지게차들이 건설 폐기물을 쉴 새 없이 밖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에쓰오일 제공
“회전수 정상!” “진동 쪽도 정상입니다!” “베어링 온도 이상 무(無)!”

“유량(流量) 쪽은 어때? 이상 없어?”

“네, 이상 없습니다!”

“오케이! 다들 수고했어.”

1일 오전 1시 울산 울주군 에쓰오일 온산공장의 중질유분해시설(벙커C유 등 중질유를 분해해 휘발유와 경유를 만드는 시설) 조종실. 핵심장치인 ‘에어블로’(외부 공기를 불어넣는 장치)가 정상 작동하자 분해2부 직원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가동에 들어간 지 3시간 만에 ‘OK 사인’이 떨어졌다.

박지만 분해2부장(47)의 머릿속엔 숨 가빴던 지난 한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3년 만에 시행한 시설 정기점검은 올해 공장의 가장 큰 프로젝트였다. 말이 점검이지 사실상 시설 전체를 해체한 뒤 재조립하는 것과 다름없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7월 울산에선 ‘헉’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찜통더위가 이어졌다.

○ 공장이 멈추니 사람들로 북적


2일 찾은 온산공장 곳곳은 건설현장을 방불케 했다. 생산시설 옆엔 대형 크레인이 서 있었고 앞마당엔 건설폐기물이 쌓여 있었다. 인부들은 트럭과 지게차로 폐기물을 실어 날랐다.

1997년 상업가동에 들어간 중질유분해시설에선 하루 평균 7만3000배럴의 휘발유와 경유가 생산된다. 온산공장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설비다. 높이가 60m쯤 되는 반응기(중질유가 촉매를 만나 분해되는 곳)와 재생기(사용한 촉매를 원래 상태로 재생하는 곳)에 여기저기 로프가 매달려 있었다. 직원 몇몇이 바깥 계단을 오르내리며 압축공기가 지나는 배관을 일일이 살펴보고 있었다.

분해2부의 한성 차장(48)은 “이 시설은 지난달 말 정기점검 작업이 끝나 7일부터 가동할 예정”이라며 “로프나 쓰레기는 가동 전에 깨끗하게 치울 것”이라고 말했다.

에쓰오일 온산공장은 서울 여의도와 비슷한 크기인 약 260만 m² 땅에 원유 정제, 중질유 분해, 윤활기유 생산, 석유화학제품 생산 등을 위한 각종 시설이 들어서 있다. 전체 직원 1600여 명 중 현장에서 시설을 관리하는 생산직은 1000여 명. 이들은 평소 4조 3교대로 일하기 때문에 평균 250명 안팎이 전체 공장을 책임지고 있다.

정유공장은 2, 3년마다 한 번씩 각 시설의 가동을 멈추고 정기점검을 한다. 예전엔 ‘셧 다운’이라 불렀지만 요즘은 ‘턴 어라운드(TA)’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쓴다. 온산공장은 올해 5월부터 최근까지 약 30%의 시설에 대해 TA를 실시했다.

평소 4조 3교대였던 생산직 근무는 주야 2교대로 바뀌고 시설 해체, 장비 점검, 검사, 청소, 내화물 시공 등을 전문으로 하는 수많은 협력업체가 한꺼번에 투입된다. TA가 집중된 지난달에는 하루 평균 4000명이 온산공장에서 일했다. 평소엔 적막하기 그지없는 정유공장은 가동이 멈췄을 때 비로소 시끌시끌해지는 셈이다.

○ 광원과 퇴직자도 투입

중질유분해시설의 반응기 내부는 지름 12m, 높이 50m 정도의 원통형 공간에 기름이 가득 채워져 있다. 돌가루처럼 생긴 촉매가 분당 40회의 빠른 속도로 휘젓고 다니며 벙커C유를 분해한다. 반응온도는 520도 안팎이다. 반응기 안쪽 벽은 촉매의 움직임, 고온, 화학반응을 견딜 수 있도록 콘크리트보다 강한 ‘내화물’로 시공된다. 그러나 3년의 시간은 곳곳에 흠집을 남기기 마련이다. 이런 균열은 훗날 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TA 기간에 흠집을 발견하면 아예 그 부분을 모두 뜯어내고 재시공을 해야 한다. 점검을 위해 기름을 모두 빼낸 반응기 내부 벽면에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계단부터 설치한다.

▼ “작업기간 길었지만 안전사고 한 건도 없어” ▼

또 하나 큰 일거리가 있다. 고온에서 중질유를 분해하면 코크스가 생성되는데, 이것이 오랜 기간 파이프나 각종 장치 위쪽에 쌓여 돌덩이처럼 굳는다. 올해 제거한 석탄(해탄·骸炭)의 양은 자그마치 200t에 달했다. 이 때문에 TA 작업에 전직 광원들이 상당수 투입되기도 했다.

평소 기름이 차있는 시설 내부에 에어컨이 있을 리 만무하다. 30도가 훌쩍 넘는 기온에 수백 명 체온까지 합쳐진 살인적인 온도에서 작업을 했다. 회사 측은 하루 두 번씩 현장에 얼음과 생수를 공급했다. 혹시나 불쾌지수 상승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어 회사가 마련한 대책이었다.

온산공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노병’들의 활약도 컸다. 운전 경험이나 시설관리는 물론이고 TA 경험도 풍부한 퇴직자들은 낯선 작업에 투입된 협력업체 직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있다. 한 차장은 “TA 때마다 60대 중반의 퇴직자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며 “이들은 전 직장에 대한 주인의식도 높아 최고의 재원”이라고 말했다.

○ 완벽 가동 전까진 ‘비상’

올해 중질유분해시설의 정비작업은 3년 전보다 사나흘 더 걸렸다. 박 부장은 “최근 전국 여러 공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서 훨씬 엄격한 기준으로 결함을 찾아내 보수했다”며 “작업량이 워낙 많아 하루 24시간씩 일했는데도 기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정비가 끝난 뒤엔 시설 내 산소를 모두 빼내야 한다. 기름을 가득 채울 곳이라 산소가 남아 있으면 작은 불꽃에도 큰 폭발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소는 대량의 질소를 넣었다 빼냈다 하는 방법으로 제거한다.

에어블로 등 핵심장치들이 재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직원들은 방심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장치들을 해체했다 재조립한 만큼 수천 곳의 연결고리에 일일이 비눗물을 칠해 가며 새는 곳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 모두 마무리되면 그제야 원료가 되는 기름을 가득 채우고 가동에 들어간다.

에쓰오일 측은 이번 TA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생산효율이 한껏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치 때를 벗겨낸 엔진의 성능이 향상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질이 낮은 원료를 투입해도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 경비 절감 효과가 크다.

올해 TA에는 사람이 매직펜으로 적던 현황판 대신 ‘턴 어라운드 프로그레스 매니지먼트 시스템(TPMS)’이라는 온라인 제어시스템을 처음 도입했다. 분해2부의 윤효성 대리(31)는 “모든 시설의 TA 작업을 전 작업자들이 실시간으로 공유한 덕분에 업무 효율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은 “올해 수천 명의 투입 인원 중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울산=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에쓰오일#온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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