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김기춘으로”… 원조친박의 귀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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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실 전격 개편]‘代이어 父女대통령 보좌’ 金비서실장

2004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7대 총선 한나라당 당선자 모임에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이었던 김기춘 당선자(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04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7대 총선 한나라당 당선자 모임에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이었던 김기춘 당선자(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박근혜 전 대표는 암울했던 지난 10여 년간 국민과 함께 투쟁하고 인고하면서 지금의 자유민주정부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각하(박정희 전 대통령)와 영부인(육영수 여사)이 떠난 후 이 세상의 모든 힘겨운 무게를 외롭게 감당해야 했던 유자녀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십시오. 각하가 못다 이룬 꿈들이 박 대표를 통해 꽃필 수 있도록 언제나 함께하고 가호(加護)해 주십시오.”

2010년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31주기 추도식에서 당시 한나라당 상임고문이던 김기춘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이 읽은 추도사다. 여권 원로그룹의 한 관계자는 5일 “당시 김 실장의 추도사를 들으며 ‘아, 박 의원의 신뢰를 받고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전했다.

청와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 김 실장은 만 74세로 전임 허태열 비서실장(67)보다 일곱 살이 더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원로급 인사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을 두고 여권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의 임명은 여러 비판이 나올 걸 감수하고 박 대통령이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자신과 손발을 맞춰 일한 사람 중 능력을 인정한 사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등과의 인연을 중시하는 인사 스타일을 갖고 있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이 높이 평가하는 법조인 출신이기도 하다. 김 실장은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과 대통령비서실 법률비서관을 지냈다.

대공수사국장 시절인 1974년 육영수 여사 살해범인 문세광 사건을 조사한 점도 눈에 띈다. 그는 올해 3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문세광에게 ‘사나이답게 당당하게 답하라’고 다그치자 문세광이 육 여사 암살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올해 6월에는 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김 실장은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냈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자 부설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이던 2005년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냈다. 당시 김 의원의 보수적 이미지가 소장 직책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에도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에선 김 실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 때문에 외곽에 있을 때도 “모든 길은 김기춘으로 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국정에 간접적으로 간여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 김 실장이 직접 국정에 뛰어든 것이라는 얘기다.

김 실장의 발탁 배경에는 허태열 전임 실장이 ‘비서’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반작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은 정무 감각과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며 “대통령의 뜻을 잘 파악하고 일머리를 잘 찾아 성과를 낼 수 있는 조건 두 가지를 모두 총족한다”며 “일을 꼼꼼히 해 주도적으로 챙기는 컨트롤타워 역할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업무 처리나 법 적용이 깐깐하다는 것. 임기 첫해 하반기 수석들을 독려하고 장악해 성과를 낼 군기반장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김 실장의 한 지인은 “김 실장이 실력 없는 사람, 얼렁뚱땅 넘어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해 대통령비서실이 ‘악 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드 보수’의 귀환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야권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김 실장은 검사 시절인 1972년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실무적으로 참여했으며 유신헌법 해설서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안에는 비상조치권 등이 포함됐고 이는 유신헌법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한 핵심 조항인 긴급조치권으로 현실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태우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 장관에 오른 김 실장은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부산의 ‘초원복국’집에서 부산의 유력 기관장들과 만나 ‘지역감정을 부추겨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득표를 돕자’고 논의한 것이 도청돼 외부로 알려진 ‘초원복집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이때 유행했다. 그는 이 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은 뒤 1996년 15대 총선 때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소추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경남 거제(74) △경남고, 서울대 법대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15·16·17대 국회의원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윤완준·고성호 기자 zeitung@donga.com

#원조친박#김기춘#비서실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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