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재벌은 왜 늘 건설업자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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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속 재벌들

TV 드라마 속 재벌들
MBC 주말드라마 ‘스캔들’의 악역은 태하그룹 회장 장태하(박상민). 1980년대 후반 건설사를 운영하던 그는 부실시공을 숨기기 위해 건물 붕괴를 폭탄테러로 위장했고, 정관계와 결탁해 기업의 몸집을 키웠다.

SBS 월화 미니시리즈 ‘황금의 제국’에서도 건설과 부동산은 주요한 소재다. 지난해 화제작 ‘추적자’의 박경수 작가, 조남국 PD 콤비의 재회로 주목받은 이 드라마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경제사를 재벌 일가를 통해 투영하고 있다. 드라마 속 재벌가 성진그룹은 1950, 60년대 건설을 통해 성장했다. 성진그룹 일가에 도전장을 내민 이는 부동산 업자인 장태주(고수)로 성진건설의 강제 철거로 아버지를 잃었다.

‘스캔들’과 ‘황금의 제국’은 모두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기, 재벌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극중 재벌들은 모두 건설업을 통해 성장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자이언트’ 등 선 굵은 남성 드라마로 분류되는 작품 중에는 건설사 출신 재벌이 적지 않게 등장해 왔다. 그렇다면 왜 드라마 속 나쁜 재벌은 늘 건설업자일까.

방송가에서는 건설업이 다른 분야에 비해 스케일이 크고 극적인 요소가 많아 부에 대한 욕망을 그리는 작품에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황금의 제국’의 이현직 SBS 드라마 EP는 “건설업은 많은 돈이 오가고 이윤을 크게 남기는 산업으로 여겨지는 만큼 ‘머니게임’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며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은 인간 욕망의 상징처럼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에서 건설업 비중이 컸다는 점도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효과가 있다. 재벌 중에는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등 건설을 통해 성장한 이들이 적지 않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은 사업 인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정관계를 엮어 이야기를 만들기에도 용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건설업이 주로 악역의 직업으로 자리 잡은 반면 ‘현대판 왕자님’ 중에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재벌 2세가 많다. 7일 시작하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SBS ‘주군의 태양’ 속 주인공은 거대 쇼핑몰을 이끄는 재벌 2세 주중원(소지섭)이다. 드라마 속에서 그는 이해타산적이지만 동시에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질 예정이다.

백화점을 가진 재벌 2세는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년)부터 ‘시크릿 가든’(2011년)까지 숱한 인기 드라마에 등장해 왔다. 최근에는 주중원처럼 백화점보다는 거대 쇼핑몰이나 호텔, 홈쇼핑 채널을 소유한 왕자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 1세대 재벌이 맨손으로 불도저식 성장을 한 인물로 그려진다면, 2세대 재벌은 세련된 해외 유학파에 성격은 까칠하지만 알고 보면 인간적인 인물로 자주 묘사된다. 방송가 관계자는 “드라마에서는 화면을 통해 부유한 모습과 세련됨을 나타내야 하는 만큼 백화점이나 호텔과 같은 서비스업이 등장인물을 표현하기에 편리하다”고 했다.

최근 제작비에서 간접광고(PPL)의 비중이 커지면서 PPL이 재벌의 직업을 결정하는 경우도 늘었다. 여성 시청자가 많은 아침드라마와 주말드라마의 재벌들은 화장품과 의류, 식품 회사 사장들이 단골로 등장하는 편이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재벌#드라마#건설업#악역#서비스업#간접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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