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남편들 찾아와 난동… ‘쉼터’가 불안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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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호남지방의 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쉼터).

낮 근무자들이 퇴근한 오후 6시 반경 한 남자가 쉼터에 침입을 시도했다. 쉼터 안에 있던 사람들이 1층 현관문을 걸어 잠갔지만 이 남자는 빗물 홈통을 타고 건물 3층 화장실 쪽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지만 남자는 옷까지 벗으며 저항했다. 평소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자가 쉼터로 피신한 아내의 동선을 추적해 쉼터까지 쫓아와 난동을 부린 것. 아내는 경찰이 수갑을 채우고 남편을 연행할 때까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가정폭력의 안전공간인 쉼터가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의 한 쉼터에서도 가정폭력으로 아내와 이혼한 남자가 자녀를 추궁해 아내가 있는 쉼터의 위치를 알아낸 뒤 4개월 동안 쉼터 설립 법인으로 협박 전화를 건 적이 있다. 2011년 11월 서울의 또 다른 쉼터는 “인터넷에 쉼터 위치를 공개하겠다. 소장과 직원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한 가해자의 협박에 쉼터를 잠정폐쇄하고 입소한 다른 피해자들까지 다른 쉼터로 피신시키기도 했다.

5일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폭력 남편들이 쉼터까지 쫓아와 “여기 있는 것 다 안다” “내 아내 내놓으라”며 협박하고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쉼터는 전국에 67곳이 있다. 대부분 사회복지법인이나 종교인들이 운영한다. 지난해에만 피해 여성 2514명과 동반 자녀 1586명에게 안식처가 됐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쉼터의 위치는 ‘극비’사항이다. 일반 가정집 같은 외관에 간판도 걸지 않아 동네 사람들마저 쉼터인지를 모른다. 하지만 일부 폭력 남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쉼터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피해자가 자녀를 데리고 피신하는 경우가 많아 자녀의 학교를 통해 쉼터 정보가 노출되기도 한다. 지난해 3월 서울지역의 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비공개를 요청하고 초등학생 자녀를 전학시켰고 이 학생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이 여성의 남편은 “내가 친권자”라며 자녀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추궁해 전학 간 초등학교를 찾아낸 뒤 다시 중학교까지 알아냈다. 다행히 쉼터가 중학교에 공문을 보내 위치 노출까지는 막았다. 하지만 해당 학생은 다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고, 여성도 함께 쉼터를 옮겨야 했다.

가정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은 “(가정폭력) 피해자 자녀가 다니는 학교나 유치원 등의 직원은 취학, 진학, 전학 또는 입소를 가정폭력행위자인 친권자를 포함해 누구에게든지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선 학교에서는 이 같은 조항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경기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정폭력 때문에 전학 가는 건 드문 일이어서 다른 직원들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상습적인 가정폭력범에 대해 엄정 대응키로 했다. 황성찬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은 “피해자 보호시설 등을 찾아가 폭행·협박하는 등 상습적이고 고질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할 방침”이라고 5일 밝혔다.

경찰은 또 법원으로부터 받은 격리, 접근금지 결정을 위반한 가해자는 바로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를 신청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One-Strikeout)’ 제도를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까지는 법원 결정을 어겨도 대부분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에 그치고 있다. 경찰은 앞으로 재발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가해자는 반드시 격리, 접근 금지 등을 신청할 계획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폭력남편#보호시설#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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