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기춘 실장, 대통령의 인사실패 반복 막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6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대통령비서실장과 대통령수석비서관 4명을 교체하는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 출범 이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청와대 참모들을 대거 바꾼 것은 과거 정부에서는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다. 박 대통령이 여름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청와대 인적 쇄신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은 새롭게 국정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은 인사위원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데 실패해 단명(短命)이 예상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인사에는 청와대 참모진이 분위기를 일신해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충실히 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주문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 멤버였다.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는 하나 74세의 나이로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시대에 요직을 맡았던 ‘올드 보이’에 속한다.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1992년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여당 후보 지지를 유도한 ‘초원복집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적도 있다. 입법·행정·사법에 통달하고 박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아 청와대를 효율적으로 꾸려가기엔 어떨지 몰라도 신선한 이미지는 아니다.

약 2개월 동안 공석으로 있던 정무수석에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전 주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를 발탁한 것은 의외다. 엄밀히 말해 외교와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다. 정무수석은 여당과 말이 잘 통해야 할 뿐 아니라 야당 지도부와도 물밑 접촉이 가능할 정도의 정치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자리에 국회의원도 한 번 해보지 않은 비정치인 출신을 앉힌 것은 전망이 불투명한 ‘실험’이다. 그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인사는 ‘수첩 인사’ ‘깜깜이 인사’ ‘늑장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인사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을 적합한 자리에 앉히는 적재적소(適材適所) 못지않게 적시(適時)도 중요하다. 지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비롯해 상당수 공공기관장 인사가 이뤄지지 않아 곳곳에서 개점휴업 상태다. 대통령비서실장 겸 인사위원장을 교체한 만큼 청와대는 보다 폭넓게 인재를 구하고 엄정한 평가를 거쳐 최대한 빨리 인사 공백을 메워야 한다.

박 대통령은 ‘정치 문제에서 비껴서 있는 대통령’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역점을 둔 ‘미래전략’이나 ‘창조경제’ 분야에서도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박 대통령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 경색된 정국을 풀고 국정에 새바람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청와대 참모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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