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목이 터져라 외쳐!… 우린 영원히 젊음에 머물 수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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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4일 일요일 맑음. 우리, 함께, 영원히. #69 Suede ‘So Young’ (1993년)

M이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그녀는 미성년이었다.

첨엔 낯설었는지 큰 눈만 반짝이며 어리둥절해하던 M은 곧 활기찬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낮엔 한쪽에 웅크리고 잠만 자다 어둠이 내리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M의 끝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불면의 밤이 시작됐다. 차가운 겨울밤에 M은 이불 속으로 살갑게 파고들어와 내 몸에 자기 몸을 붙였다. 따뜻하고 작은 M의 몸을 느끼면서야 난 꿈속에 들 수 있었다. M은 고작 한 살이었다.

난 그에게 ‘밀’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밀은 회사 앞 작은 상자에 담겨 버려진 아기 고양이였다. 왠지 그에게 슬픈 비밀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밀(密)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는 밤마다 방바닥에 뒹구는 휴지조각을 두 앞발로 드리블하며 사방팔방 천방지축 어둠 속을 헤매었다. 돌아보면 그건 놀이라 불리는, 성장의 과정이었다.

처음 록 페스티벌에 갔던 2006년이 떠오른다. 지축을 울리는 굉음에 반갑게 놀라며 무대 앞으로 나아갔다. 낯선 이들과 몸을 부딪치며 피부와 심장으로 거대한 소리를 느꼈다. 낯선 사람들 손에 들려 내 몸은 관객의 바다 위를 서핑했다. 그때 난 밀이었다.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두 발로 느끼며 지구 위를 뛰어놀았으니까.

그때 그곳, 인천 송도에 지금 7년 뒤의 내가 있다. 무뎌졌나 보다. 록 음악이 터져 나오는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팔짱을 끼고 있는 나. 어젯밤, 영국 밴드 스웨이드의 공연을 여기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봤다. “너와 나는 쓰레기”라 외치는 노래 ‘트래시’는 10여 년 전만큼 신나거나 아프게 들리지 않았다. “우린 너무 젊어… 용을 쫓아가자”는 곡 ‘소 영’이 울려 퍼질 때 문득 밀이 떠올랐다.

오늘밤 미국 록 밴드 폴 아웃 보이가 꾸밀 이곳 메인무대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0대에 결성됐지만 어느덧 30대가 된 멤버들은 최근 5년 만에 낸 폭발적인 새 앨범 제목을 ‘세이브 로큰롤’로 정했다.

“내가 널 바꿔줄게, 리믹스처럼/그러고 나서 길러줄게, 피닉스처럼”(‘더 피닉스’)을 목청 터질 듯 따라 부르며 난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너 하늘나라로 간 그녀, 밀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그들의 신곡 ‘얼론 투게더’의 후렴구에 맞춰 뛰며 하늘을 향해 난 팔을 힘껏 뻗을 거다.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녀의 귀여운 앞발을 잡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쳐! … 우린 영원히 젊음에 머물 수 있어.”(‘얼론 투게더’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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