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황지해 “한땀 한땀 어머니 바느질처럼… 한국의 풀로 한국美 수놓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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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테마 정원 ‘뻘’ 800m² 프랑스에 영구 조성하는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씨

프랑스 롱르소니에 시에 영구 보존되는 황지해 작가의 정원 ‘뻘: 순천만, 어머니의 손바느질’. 흙을 채운 철골 구조물에 흰 꽃을 동그랗게 심은 플라워 돔(오른쪽)과 푸른 언덕이 수심 1cm 위 계류에 비쳐 장관을 이룬다. 이성용 씨 제공
프랑스 롱르소니에 시에 영구 보존되는 황지해 작가의 정원 ‘뻘: 순천만, 어머니의 손바느질’. 흙을 채운 철골 구조물에 흰 꽃을 동그랗게 심은 플라워 돔(오른쪽)과 푸른 언덕이 수심 1cm 위 계류에 비쳐 장관을 이룬다. 이성용 씨 제공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37).

정원 디자이너라는 직업만큼이나 그의 이름은 국내에선 낯설다. 하지만 정원 문화가 발달한 영국에서 그는 ‘첼시의 여왕’으로 불린다. 무명의 유학 준비생이던 그는 세계 최고 권위의 정원박람회 ‘첼시 플라워 쇼’에서 2011, 2012년 연속 1등상을 받았다.

다음 달 24일 프랑스 동부 도시 롱르소니에에서는 그가 순천만을 테마로 설계한 정원 ‘뻘: 순천만, 어머니의 손바느질’이 800m² 규모로 개장한다. 지난해 네덜란드 국제원예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이다. 롱르소니에 시가 대지와 재시공 비용을 제공했고, 순천시와 아시아나항공이 일부 시공 비용을 부담했다.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잠시 귀국한 황 작가는 “정원 디자이너로서 작품이 전시 후 버려지지 않고 영구 보존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라고 했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에 가보세요. 가족들을 위해 어머니가 정성 들여 바느질하듯 자연이 한 땀 한 땀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한국 식재로 표현했죠. 질경이 쑥 오이풀 창포 엉겅퀴 뱀딸기 꼬리조팝나무….”

황 작가가 보여준 사진을 보니 순천만의 독특한 풍경이 정원에 그대로 담겼다. 바늘과 실 모양의 커다란 조형물, 그리고 동력을 사용해 서서히 열리고 닫히며 알에서 깨어나는 꽃을 상징하는 한국관도 인상적이다.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황 작가는 한국적인 주제를 들풀 같은 토종식물을 주로 써서 표현해낸다. 꾸밈없는 원시성이 돋보인다. 2011년 소형 정원(20m²) 부문 1등상 수상작인 ‘해우소: 마음 비우기’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화장실을 테마로 제출했더니 처음엔 다들 농담이냐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가 버리는 것이 흙을 살찌우고, 그 흙에서 자란 식물이 사람을 살찌우는, 생명의 순환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철학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드는 큰 울림이 되더군요.”

이듬해엔 비무장지대를 주제로 한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정원’을 출품해 대형 정원(200m²) 부문 1등상과 함께 800점이 넘는 전체 출품작 중 1등상을 차지했다. 현지 언론은 “올해 여왕이 만나게 될 가장 독창적인 정원이다” “잡초가 보물로 변신했다”며 놀라워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 DMZ예요. 60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적 감성에 자연의 재생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정원의 본질이 담겨 있는 곳이죠.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 탄생하는 그 역설의 공간을 그곳에서 자라는 희귀종과 군번줄, 이산가족들의 편지 등을 이용해 정원으로 꾸몄습니다.”

‘DMZ 금지된 정원’은 현재 런던 플레저가든으로 옮겨져 있다. 내년까지 전시된 후 영구 보존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황 작가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쌈지공원 조성, 가로디자인, 조경 등 환경미술을 10년 넘게 해오다 정원 디자인으로 활동 영역을 좁혔다. 작업의 스케일이 커진 만큼 노동의 강도도 세지고, 비용도 많이 든다.

“정원은 시간예술이에요. 개화시기에 맞춰서 빨리 심어야 식재가 제자리를 잡고 물도 줄 수 있죠. 머리카락 심듯 맨손으로 몇만 개를 심는 일은 그야말로 중노동입니다. 매니큐어를 발라보는 게 소원일 정도예요.”

‘해우소: 마음 비우기’의 제작비 3억8000만 원은 자비로 충당했고, ‘DMZ 금지된 정원’의 제작비(8억 원) 절반은 후원을 받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프로젝트의 후원자 찾기는 무척 버거운 일이다.

“그래도 무생물로 작업할 때 느꼈던 한계나 갈증을 풀과 나무로 작업할 때는 못 느껴요. 어릴 적에도 어머니의 텃밭이 좋았어요. 제 영혼의 양식이죠. 번잡스럽던 마음이 정원 일을 할 땐 고요해지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아요. 사람의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게으른 정원을 좋아합니다. 바람에 날아온 씨앗이 멋대로 자라나 만들어진 표정,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효과, 이건 사람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거죠.”

황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에 가면 된다. 박람회장 동천 갯벌 공연장 주변에 그가 만들어놓은 정원 ‘갯지렁이 다니는 길’이 있다. 박람회 조직위원회는 지난달 31일 ‘갯지렁이 다니는 길’ 주변 숲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텃새인 붉은머리 오목눈이가 둥지를 틀고 새끼 4마리를 키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발표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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