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인종보다 인간에 초점… 흑인 작가가 쓴 흑인 소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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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소리/제임스 앨런 맥퍼슨 지음/안정효 옮김/400쪽·1만3000원/마음산책
◇행동반경/제임스 앨런 맥퍼슨 지음/장현동 옮김/416쪽·1만3000원/마음산책

흑인의 정체성은 오직 그의 피부색에서만 비롯하는 걸까? 1978년 흑인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가 된 저자의 단편집 두 권은 이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민권운동의 시대로 상징되는 1960, 70년대 미국 흑인 작가가 쓴 ‘흑인 소설’이지만 작품 속 인물은 차별 철폐와 권익 옹호를 부르짖으며 분노하는 흑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짝사랑했던 여자친구와 댄스 파트너가 됐던 추억을 떠올려 주기에 다른 흑인들이 ‘억압자(백인)의 음악’이라며 백안시하는 컨트리 음악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흑인 청년(‘컨트리 음악이 좋은 이유’), 술과 섹스, 범죄에 빠져 도시 뒷골목과 교도소를 전전하다 한쪽 눈까지 잃은 사촌이 한심하기만 한 흑인 엘리트(‘죽은 자의 이야기’)처럼 성, 종교, 계층에 따라 그 결이 제각기 다른 흑인 개개인을 세밀히 재현한다.

반전 운동, 맬컴 X와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이 일어난 1960, 70년대 격변기 미국이 배경이지만, ‘조선족’이나 ‘다문화가정’ 같은 모호한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타자를 뭉뚱그리는 데 익숙한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텍스트로도 손색이 없다.

반세기도 전에 동성애에 빠지게 되는 흑인 청년의 이야기(‘새로운 터전’)나 신혼부부 1000쌍 중 1쌍꼴로 드물었다는 백인 남편과 흑인 아내의 결혼기(‘행동반경’) 같은 소재를 과감히 다룬 것만 봐도 ‘소수자 속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퓰리처상 수상 결정이 흑인 작가를 배려한 것이라는 논란이 일자 작품 발표를 일절 중단하고 대학에서 후진 작가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는 작가의 이력도 흥미롭다. 1978년 퓰리처상을 받은 단편소설 ‘행동반경’을 번역했던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와 현대시 평론가인 장현동의 손을 거친 번역도 매끄럽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흑인#제임스 앨런 맥퍼슨#외치는 소리#행동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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