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품위있게 죽을 권리’ 인정하는 특별법 서둘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일 03시 00분


노인들 사이에 ‘9988234’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앓고 죽자’는 뜻이다.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다는 소망 이외에 병치레를 오래하지 않고 편안하게 잠자듯 떠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그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권고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임종 과정의 환자에게 연명치료 중단을 검토할 수 있다.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전문 의학기술과 장비가 필요한 특수 연명치료가 대상이며 영양이나 수분 공급 같은 일반 연명치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환자가 평소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혔거나 환자의 뜻을 알 수 없을 때는 가족 전원의 동의, 환자의 가족이 없을 때는 병원윤리위원회가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결정은 존엄사를 사실상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다. 2009년 5월 대법원이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김모 할머니의 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린 후 4년여 만에 제도화하는 셈이다. 환자의 뜻과는 반대로 가족과 병원이 제도를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향후 입법 과정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국내 연명치료 대상은 연간 최소 3만 명에 이른다. 연명치료는 많은 경우 환자에게는 고문과 같은 고통을 주고, 가족에게는 힘겨운 경제적 부담을 안긴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암 환자는 사망하기 전 마지막 한 달 동안에 전체 암 치료비 중에서 36.3%를 쓴다. 비용 마련을 위해 매년 3만여 가구가 모아둔 저축을 다 쓰고, 1만여 가구는 사는 집을 줄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 환자의 10배가 넘는 의료비를 사용하는 말기 환자들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가 기계장치에 의지해 무의미한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품위 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 한국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환자에게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죽음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평소 가족과 대화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연명치료를 둘러싼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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