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태평양 건너 일본에 부끄러움 일깨우는 소녀像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일 03시 0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 외곽 글렌데일 시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像)’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것과 ‘쌍둥이’다. 글렌데일 시에 사는 1만여 재미동포가 성금을 마련하고 2년 동안 이 지역 주민과 시정부, 시의회를 설득해 건립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이 소녀상은 태평양 건너 일본을 바라보며 침략과 인권 유린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깨우쳐 줄 것이다.

제막식에 참석한 양심적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들은 “일본 정부와 정치인은 과거사를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바른말을 했다. 하지만 일본 관방장관은 “지극히 유감”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정치 문제와 외교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억지소리를 했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소녀상 건립 계획이 알려지자 현지 외교공관 등을 통해 건립을 방해했다.

일본에서 최대 부수를 발간하는 요미우리신문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가 소녀상 설치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며 ‘고노 담화의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국수주의 저널리즘의 표본이다. 일본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할수록 일제 식민의 피해를 기억하는 곳에는 제3, 제4의 소녀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일본 내부의 우경화 바람을 타고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데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일본 정치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망언(妄言)을 쏟아내고 있다. 문부과학상은 한일 축구경기 도중에 역사 문제를 거론하는 플래카드가 걸린 것에 대해 “그 나라의 민도(民度)가 의심된다”는 막말을 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독일 나치 정권의 헌법 무력화 수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소는 어제 발언을 철회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도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독일의 가톨릭 신학대학에서는 히틀러식 경례를 한 대학생 두 명이 퇴학당했다. 나치의 출생지인 독일에서는 나치를 찬양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치 문양을 사용하는 행위까지 형사처벌하고 있다. 반면 일본 부총리는 나치식 개헌을 주장하는 판이니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8월 15일 광복절이 곧 다가온다. 일제가 패망한 이날에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각료들이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 참배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이다. 일본이 관계 정상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역사 문제와 관련해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식민지 피해의 경험을 가진 이웃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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