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멜로+특정직 소개… 대장금 닮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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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어디선가 봤다 했더니…
시청자들 “도자기 만드는 대장금”… ‘이병훈표 퓨전사극’ 공식 충실

MBC ‘대장금’과 닮은꼴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서 남장을 한 문근영. 극중에서 강단 있게 위기를 헤쳐 나가는 성격이 ‘대장금’의 장금(이영애)과 닮았다. MBC 제공
MBC ‘대장금’과 닮은꼴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서 남장을 한 문근영. 극중에서 강단 있게 위기를 헤쳐 나가는 성격이 ‘대장금’의 장금(이영애)과 닮았다. MBC 제공
조선시대에 태어난 여주인공이 부모를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꿈을 품고 궁에 들어가 경쟁자의 시기와 모함을 이겨내고 결국 전문직 여성으로 크게 성공한다….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 백파선의 삶을 다룬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연출 박성수, 정대윤)의 줄거리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고? 맞다. 2003년 방영된 같은 채널의 ‘대장금’도 같은 이야기였다. 장금이의 전공이 요리와 의술이고, 유정의 전문 분야가 도자기라는 점이 다를 뿐이지 아이에서 시작해 성공을 거두기까지 성장곡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전체적 포맷이 같다. 닮은꼴의 두 드라마를 두고 ‘장금이가 이번에는 도자기를 만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주인공 문근영(유정)과 이영애(장금)의 극중 캐릭터는 진짜 비슷하다. 정이는 가마신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뛰어난 오감을 가졌다. 장금이도 ‘절대 미각’을 타고나 요리에 재능이 있고, 뒤늦게 배운 의술에도 두각을 나타낸다. 두 여자 모두 신분과 성별 때문에 출세에 제약을 받지만 남다른 강한 의지와 곧은 성정으로 이겨낸다.

여주인공의 성공이 돋보이도록 주·조연급의 남성 출연자는 이들을 돕는 조력자 역할에 그친다. 장금에겐 ‘종사관 나리’(지진희)가 있었고, 정이는 ‘마마’ 광해(이상윤)와 ‘태도 오라버니’(김범)가 돕는다. 이들은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여성 원톱의 묵직한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한다.

주인공의 천부적 재능을 질투해 모략을 꾸미는, 세대를 잇는 라이벌이 있다는 설정도 같다. ‘대장금’에서 사제지간인 최 상궁(견미리)-최금영(홍리나)은 계략을 꾸며 장금을 수라간에서 내쫓는다. ‘불의 여신 정이’에는 부자지간인 이강철(전광렬)-이육도(박건형)가 정이 부녀의 재능을 질투하는 경쟁 세력으로 나온다.

두 드라마는 왜 이렇게 닮은 걸까. 방송 관계자들은 ‘이병훈 효과’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병훈 PD는 그동안 MBC에서 ‘대장금’을 비롯해 ‘허준’ ‘상도’ ‘마의’ 등 독특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사극을 연출했다. 이 PD가 ‘불의 여신 정이’ 연출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 PD 사극의 유전자(DNA)가 후배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이 PD는 궁중 암투를 다룬 전형적 사극에서 벗어나 선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성공하는 퓨전 사극을 만든 주인공이다. MBC 사극에는 ‘이병훈 스타일’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대장금’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대박을 낼 정도로 검증된 사극 코드이기 때문에 재탕의 유혹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배국남 문화평론가는 “멜로가 있는 성공스토리에 의술이나 요리 등 특정 분야의 정보를 곁들인 것이 ‘이병훈 스타일’ 사극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색다른 사극 연기를 보여줬던 문근영이라는 카드로 상투적 전개를 반복하는 점은 아쉽다”고 분석했다.

‘불의 여신 정이’의 김승모 MBC CP는 “백파선과 도자기는 다뤄본 적이 없는 낯선 인물과 소재”라며 “친숙하게 풀려고 하다보니 어디서 본 듯해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당시엔 사치품이었던 도자기를 만드는 여성이 왕실의 후계 경쟁에 휘말리며 겪는 일을 다뤘다고 보면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이병훈#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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