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수첩] 초대받지 못한 ‘LA다저스 영웅’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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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8월 2일 07시 00분


박찬호. 스포츠동아DB
박찬호. 스포츠동아DB
지난달 26일(한국시간)부터 29일까지 열린 신시내티 레즈-LA 다저스의 4연전 당시 다저스타디움을 찾은 한인 동포는 2만50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특히 다저스 류현진과 레즈 추신수의 맞대결이 펼쳐진 28일 경기 때는 마치 잠실구장을 LA로 옮겨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 날 열린 ‘한국의 날’ 행사에선 소녀시대의 태연이 애국가를, 티파니가 미국 국가를 불렀다. 써니는 시구를 맡았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주말이었다.

이런 뜻 깊은 행사에서 아쉽게도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기간 박찬호는 미국에 있었다. ‘한국의 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관광공사 측이 박찬호에게 시구를 맡아달라고 제안했지만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호는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해 2001년까지 주축 선발투수로 맹활약했다.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메츠를 거쳐 2008년 다저스로 돌아와 1년간 불펜투수로 뛰었다. 다저스에서 몸담은 9년간 84승이나 따냈다. 개인통산 124승의 68%에 달한다. 2001년에는 올스타로 뽑히기도 했다. 고국을 떠나 LA에서 밤낮으로 일하느라 야구구경을 할 겨를이 없던 동포들에게 다저스는 어느덧 홈팀이 됐다. 그 일등공신이 박찬호였다.

박찬호 하면 늘 떠오르는 인물이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다. 1995년 다저스에서 신인왕을 차지한 노모는 1998시즌 도중 메츠로 트레이드됐다. 그리고 2002년 컴백해 2004년까지 총 6년 반을 다저스에 몸담았다.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노모가 다저스에서 따낸 승수는 박찬호보다 3승이 적은 81승이다. 다저스 구단은 8월 11일을 ‘노모 히데오 버블헤드의 날’로 정했다. 올해가 벌써 2번째다. 그러나 다저스 구단은 박찬호의 버블헤드를 나눠줄 계획을 아직 세우지 않았다. 뭔지 모를 어긋난 관계가 다저스와 박찬호 사이에 있다는 느낌이다.

최근 한국의 TV예능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박찬호는 자신을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만드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 첫 번째 에이전트 스티브 김을 줄곧 ‘하숙집 아저씨’라고 표현했다. 오락프로그램이기에 재미를 위해 그렇게 말했을 수 있지만, 두 사람이 호형호제하던 사이였음을 생각하면 귀에 거슬렸다.

게다가 박찬호는 부상으로 부진의 늪에서 헤매던 텍사스 시절 자신에게 ‘먹튀’라는 표현을 쓴 한국 특파원들에 대해 ‘배신’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쓰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평소 형-동생처럼 지내던 사이였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10년도 지난 일을 이제 와서 꺼내는 것을 보면 그의 ‘뒤끝’이 참 질긴 듯하다. 거꾸로 특파원들이 기자의 직분을 눌러가며 때론 통역으로, 때론 로드매니저로, 그리고 대부분은 말동무로 그의 고독한 빅리그 생활을 달래줬던 사실을 상기하면 표현상의 문제를 ‘배신’이라는 어마어마한 낱말로 규정짓는 박찬호야말로 주변 사람 모두를 배신한 꼴은 아닌지 싶다.

박찬호는 2차례나 LA를 떠나면서도 단 한번도 한인 팬들과 커뮤니티에 대해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미국프로농구(NBA)의 슈퍼스타 샤킬 오닐이 LA 레이커스에서 트레이드됐을 때 LA타임스에 대문짝만하게 전면광고를 내서 ‘LA 팬들에게 감사한다’고 인사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씁쓸하다.

다저스타디움이 한국인의 잔치집이 된 지난 주말 다른 사람이 아닌 박찬호가 얼굴을 보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한인 팬들과 교류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장면이었을까. 어쩌면 박찬호는 미처 인사를 챙기지 못한 동포들을 보기가 민망하고 미안해서 몸을 감춘 것이었을까.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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