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흑인들 “지머먼 죽여라”…유리창 깨고 경찰차 파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5일 20시 22분


코멘트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몸싸움 끝에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타운하우스 자경단원 조지 지머먼의 무죄평결에 항의하는 흑인들의 항의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흑인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는 14일 "이번 평결은 인종차별"이라며 이틀째 시위를 이어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성명을 내고 "마틴의 죽음은 그의 가족과 지역사회뿐 아니라 미국의 비극"이라면서도 "미국은 법치국가이며 배심원들은 평결을 내렸다"며 국민들이 평결을 받아들이고 냉정해질 것을 촉구했다.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는 일요일에도 수십 명의 시위대가 미시간 애비뉴 등을 행진했다. 이들은 휴지통을 불태우고 상가 건물 유리창을 깨는가 하면 거리에 세워진 경찰차를 파괴했다. 또 현지 지역신문사를 공격하려고 했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는 40여 명의 시위대가 마틴이 사망할 당시 편의점에서 샀던 음료수와 스키틀(과일사탕)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조직한 세븐 휴즈(35)는 센테니얼 올림픽 공원에서 총탄에 맞아 쓰러진 마틴의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시위에 참석한 전직 공무원 벨마 헨더슨(65)은 "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닌 인종차별적 시스템"이라며 사법제도를 비판했다.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등 주요 대도시에서도 시위가 잇따랐다. 시위는 당분간 이어질 예정이어서 지머먼 무죄 평결에 따른 미 사회의 갈등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경찰이 지머먼을 석방해 논란이 일자 "내게 아들이 있었다면 트레이번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말해 검찰의 기소를 이끌어냈다. 이에 대해 공화당 측은 오바마 대통령이 사건을 정치화했다고 비난했다.

스티브 킹 하원의원(아이오와)은 14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기소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라며 "오바마 대통령과 법무부 등이 정치화하고 언론이 인종문제를 부각시켰다"고 주장했다.

정작 석방된 지머먼의 미래도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트위터에서는 '지머먼을 죽여라'는 메시지가 큰 지지를 얻고 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그에게 "대도시로 이사해 새 신분을 얻고 숨어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마틴의 가족이 지머먼에 대해 민사소송을 낼 수 있고 연방 법무부는 그를 인권침해 혐의로 다시 기소할 수도 있다.

지머먼처럼 무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대중의 반발을 산 피고인들의 미래는 평탄하지 못했다. 2011년 자녀 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여성 케이시 앤서니는 여전히 숨어 살고 있다. 전 부인과 그녀의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OJ 심슨은 무장 강도 등 다른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유명세를 탄 지머먼이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써 큰돈을 벌 수도 있다. 그는 측근들에게 "나처럼 잘못된 법의 심판을 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법대에 진학하겠다"며 장래 계획을 밝혔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워싱턴=신석호·뉴욕=박현진특파원 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