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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예수와 부처가 펄쩍 뛸 얘기지만 그들도 편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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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예수와 부처가 펄쩍 뛸 얘기지만 그들도 편애했다

동아일보입력 2013-06-29 03:00수정 2013-08-3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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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하는 인간/스티븐 아스마 글, 그림/노상미 옮김/320쪽·1만5000원/생각연구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사람은 참 각양각색이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찌나 서로들 제각각인지. 분명 이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제다 싶은데도 누군가는 고개를 젓는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이는 ‘가족이나 친구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이 마지막 문장엔 분명한 메시지가 하나 숨겨져 있다. 가족 친구 지인…. 이들마저 다를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은 최소한 타인보다는 비슷하거나 공유하는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인간은 ‘관계의 정도’에 따라 관심도와 신뢰도가 차이날 수밖에 없다. 왜 아니겠나. 친구 셋이 길을 가도 편이 갈리는 게 인간사의 현실인데.

‘편애하는 인간’은 이 대목에 주목한 책이다. 한마디로 인간에게 편애란 본성 혹은 본능이니 이를 억누르려고 하지 말자는 얘기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그거야 똑같은 손이니까 그런 거지. 자식도 덜 예쁜 놈, 더 미운 놈이 있다. 차별대우야 안 되겠지만 마음이 그리 가는 걸 어쩌나. 실은 사랑이란 감정도 일종의 차별이다. 한 상대를 다른 이보다 편애하는 거니까.


다행스러운 점은 보통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저자에 따르면 불편부당을 실천한 성자나 위인조차도 편애로부터 자유롭진 않았다. 예수도 열두 제자 가운데 유독 요한에게 애정을 쏟았고, 석가모니도 제자 아난다 존자를 특별히 아꼈다. 간디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면 특별히 더 사랑하는 사람은 단념해야 한다”고 설파했건만, 유대인 건축가 헤르만 칼렌바흐와의 우정은 솔직히 ‘단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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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우리네 평범한 인간들은 맘 놓고 편애 좀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 등장한다. 바로 공정(fairness)이다. 사실 공정이란 개념은 입장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공평(equality)’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지만, 어떤 이들은 ‘능력에 따른 보상’을 공정이라 부른다.

공리주의자들은 절대 다수의 행복을 공정하다고 주장하며, 경쟁사회를 선호한다면 동등한 룰을 적용해 성과에 따른 차별이 주어지는 것을 지향한다. 그런데 그 뜻이 무엇이건 간에 공정은 편애와는 대치할 수밖에 없다. 출발선에서건 도착점에서건 편애가 개입하면, 그 게임은 편애의 혜택을 보지 못한 이들에겐 어쨌든 불공정할 테니까.

이런 위험 소지가 있음에도 저자가 편애를 편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대사회가 공정에 집착하다가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고 본다. 저자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일 때 경주대회에 나가서 우승 리본을 받아왔다. 흐뭇해진 그는 아이의 1등을 마구 치켜세웠는데 아이는 오히려 짜증을 내더란다. 왜냐면 반 전체가 모두 ‘우승’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등수를 매기지 않고 참가자 전원에게 리본을 줬다. 하지만 그게 과연 공정한 걸까. 뭔가를 잘한 아이를 더 칭찬해주는 게 정녕 편애일까.

저자는 오히려 현대 서구사회는 고대 동양이 지닌 ‘편애의 미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타인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신뢰를 쌓은 벗에게 더 베풀려는 마음도 나쁘게 볼 게 아니다. 편애가 넘치면 문제가 발생하지만, 경직된 공정 역시 과부하가 걸린다.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이롭지 않다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꽤 재밌다. 다양한 역사와 철학, 과학을 넘나드는데도 문장이 편안하고 간명해 읽을 맛이 난다. 편애나 공정을 새롭게 접근하는 시각도 참신하다. 다만 저자도 우려했듯 이런 주장은 ‘꼬인 인간들’ 손에 들어가면 오용될 여지가 많다. 저자는 족벌사회의 장점도 배워야 한다지만, 그 시스템 아래 오랫동안 신음했던 이들이라면 펄쩍 뛸 소리다. 평등 강박에 빠져서도 안 되겠지만, ‘편애의 부조리’가 만드는 피해도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고, 자연스럽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channelA편지 대신 촌지…빛 바랜 스승의 날

#편애하는 인간#관계의 정도#관심도#신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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