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정규직 현실적 발상” vs “그래봐야 또 비정규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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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늘린다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꺼내 든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에 대해 문재인 민주당 의원 등 야권과 노동계가 연일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문 의원은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고용률 70%를 위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들 하니 정말 걱정되네요. 오히려 비정규직을 줄여가야죠”라고 썼다.

박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그런 (시간제) 일자리가 굉장히 많다”고 언급하면서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나타낸 것이다.

○ “고용률 끌어올릴 수 있는 획기적 대안”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꺼내 든 것은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하는 정규직 위주의 고용구조에서는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월 말 기준 59.8%인 고용률을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까지 70%로 끌어올리려면 약 29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박 대통령 집권 5년간 해마다 약 58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증가 폭이 29만 개 정도에 그칠 것으로 추산한다.

그래서 정부가 꺼내 든 카드가 일자리 창출이 아닌 ‘일자리 나누기’다. 정규직이 일상적으로 하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줄여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과 중장년층에게 나눠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약 2500만 개인 일자리 중 10%만 나누면 25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한국 경제 상황에서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4대 보험을 적용해주는 등 정규직과 차별 대우를 하지 않게 해 정규직에 가까운 ‘준정규직’을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했지만 정규직만으로 고용시장,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 전례가 없다”면서 “시간제 일자리를 비롯해 산업 구조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 양산”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현재의 고용 시스템 속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네덜란드 모델을 벤치마킹한다고 하는데 네덜란드에는 노사 간 대타협을 통해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을 확립해 시간제 근로자들이 차별받지 않는다”면서 “그런 장치 없이 시간제 근로제를 확대하면 차별받는 비정규직을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강조하면 공기업 등에서 정규직 채용 대신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해 정규직의 문만 좁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간제 채용을 확대하면 전체 고용 인원은 늘어나지만 정규직 인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양면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이런 우려로 인해 단기적으론 고용률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생산 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동 가용인력을 늘리는 방법으로 여성과 고령층에게 일자리를 나눠 주겠다는 정책의 방향성은 맞는 것 같다”면서도 “노동 환경과 일자리에 대한 인식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비정규직#준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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