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의 우울증 이기기]부정, 탈출, 대면, 세 갈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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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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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야근과 회식으로 지친 일주일을 마치고 돌아온 주말 내내 침대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누워 지내는 분이 많다. 그렇게 많이 쉬었는데도 막상 일요일 저녁이 되면 ‘잘 쉬었다’는 생각이 안 든다.

잘 먹고 누워 있기는 누워 있었는데, 어제 못한 일, 어제 꼬인 인간관계, 내일 맞닥뜨릴 사람과 일 등등이 비록 의식하지는 못해도 온종일 마음을 짓누른 탓이다. 외면하고 싶어 눈은 TV에 가 있지만, 실제로는 수십 개의 창을 열어둔 컴퓨터 화면처럼 부하가 걸린 상태인 것이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을 때가 있다. 언젠가 친구에게 전기 충격 치료를 받으면 과거의 기억이 일부분 사라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더니, 눈을 번쩍 뜨며 “전기 충격 치료라도 받고 싶다”고 답해 놀란 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편안하고 문제 없어 보이는 친구가 기억을 잊기 위해 전기 충격 치료를 받고 싶다니. 그만큼 과거의 기억, 현재의 부담에서 단절되어 ‘새로 고침(refresh)’, 혹은 아예 ‘초기화(reset)’하고 싶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뜻 아닐까.

부정하고 억압하고 싶은 현실과 쓰라린 과거, 불확실한 미래가 우리를 짓누를 때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세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부정(denial)’이다. 부정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해리성 장애다.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한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타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려는 병이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을 때 나의 기억과 정체성이 통째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뒤바뀌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이렇게 해리성 장애를 겪는 주인공을 볼 때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일종의 부러움을 느낀다. 주인공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질환을 앓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심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부정’의 심리와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찜찜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누워서 TV를 보는 행동도 일종의 ‘부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갈래는 ‘탈출(escape)’이란 방법이 있다. 아예 내가 속한 환경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 중에 이런 길을 택한 한 사람이 있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은 본래 주식중개인이자 사업가였다. 그러나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과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는 이런 모든 상황을 뒤로한 채 그림에만 몰두하다가 아예 자기 자신을 포기해 버릴 심산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남태평양 타히티 섬으로 갔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등지고 진짜로 자신의 과거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가 남긴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보면, 도리어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천착했음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하나 키우며 살아온 중년 여성이 아들 결혼을 앞두고 우울증이 생겼다. 남편의 빈자리를 아들로 메우며 살아왔는데 이제 아들의 빈자리를 메울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이 떠났던 과거의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중년 여성은 혼자가 된 현재 상황에도 눈감아 버리고만 싶고, 새롭게 정립될 가족 관계에 대해서 극도의 불안감이 생겼다.

사람이 어느 정도 이상 불안해지게 되면, 도리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기가 싫다. 침대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온종일 누워만 있다. 무기력해진다. 현실 속의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택할 수 있는 길은 ‘대면(confrontation)’이다. 대면은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과 불안, 공포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래의 요괴 중에 ‘어둑서니’라는 요괴가 있다. 밤길에만 나타난다는 이 요괴는 만난 상대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만큼 몸집을 불릴 수 있다고 한다. 두려워하면 할수록 공포가 커진다는 의미로 ‘어둑서니는 올려다볼수록 크다’라는 북한 속담도 있다.

어둑서니가 커지게 되면 상대는 더욱 겁을 먹게 되고, 이렇게 점점 거대해진 어둑서니는 사람을 해치게 된다. 이 요괴를 물리치려면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시선을 낮추어 어둑서니를 내려다보아야 한다. 그러면 어둑서니는 점점 작아지게 되고, 결국에는 도망을 치게 된다고 한다.

우리를 압도하는 고통스러운 과거나 아픈 현실, 두려운 미래 때문에 생기는 우울과 불안을 이 어둑서니에 빗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용기를 내어 우리를 두렵게 하는 대상을 대면했을 때, 압도되지 않고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조상들은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울증 환자분들에게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망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은 의사로서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스콧 펙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첫 문단을 읽어 주고 싶다.

“삶은 고해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진정으로 삶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더이상 힘들지 않게 됩니다.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힘들다는 사실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부정#탈출#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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