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첫 좌우연정 출범… ‘정치절벽’ 두달만에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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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세 총리 레타, 내각구성 완료
베를루스코니 ‘정국 영향력’ 부활
금융시장 안정세… 금리 2년만에 최저

이탈리아에서 2월 총선을 치른 지 두 달 만인 28일 우여곡절 끝에 새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원내 1당인 중도 좌파 민주당과 2당인 중도 우파 자유국민당, 중도연합이 합친 대연정(大聯政)이다. 새 내각은 민주당 부대표 출신으로 유럽연합(EU)에서 최연소인 엔리코 레타 총리(46)와 21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됐다.

좌우 대연정은 이탈리아에서는 사실상 처음이다. 1978년 대연정이 모색됐으나 ‘붉은 여단’의 알도 모로 총리 납치·살해 사건 뒤 무산됐다. 정파 간 분열이 심한 이탈리아에서 대연정까지 이뤄진 건 유럽 재정위기의 화약고로 불려온 유로존 3위 경제대국 이탈리아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재계와 노동계도 레타 내각을 환영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지난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해 시장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내각의 2인자인 부총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후계자로 불리는 안젤리노 알파노 자유국민당 사무총장(43)이 맡았다. 그는 내무장관도 겸임한다. 새 정부가 ‘붕가붕가 파티’로 상징되는 섹스 스캔들과 국가 신뢰도 추락의 책임자라는 비판 속에서 2011년 11월 물러났던 베를루스코니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탈세와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재판 중인 베를루스코니는 2011년부터 자신을 대신해 당을 이끌어온 알파노 등 자유국민당 각료를 통해 정국에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또 다른 측근 게타로 카를리아렐로는 최대 현안인 선거법 개정을 주도하게 됐다. 베를루스코니의 정치 자문 역을 해온 잔니 레타는 레타 총리의 삼촌으로 연정의 가교 역할을 할 것 같다.

이 밖에 경제부는 파브리치오 사코만니 전 중앙은행 총재, 외교부는 엠마 보니노 전 EU집행위원이 책임진다. 마리오 몬티 전 내각에서 이탈리아판 ‘철의 여인’으로 불린 안나 마리아 칸첼리에리 내무장관은 법무장관으로 옮겼다. 레타 총리와 내각은 29일 상·하원 신임투표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첫 여성 외교장관 배출 및 최다 여성 각료 등장을 두고 성개방의 시대적 흐름을 뚜렷이 반영한 내각이라는 평이 나온다. 의사 출신인 세실 키엔게 통합부 장관은 다문화 정책을 책임질 최초의 흑인 각료다. 라스탐파 등 현지 언론은 “많은 여성과 새 얼굴의 등장, 좌우파의 갈등을 상징했던 구세대 정치인들의 퇴장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내각의 면면은 호평을 받지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갈 길이 멀다는 전망이 많다. 공산당을 뿌리로 하는 민주당과 반공 세력을 주축으로 한 자유국민당의 이념적, 정책적 시각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1, 2년 내에 조기 총선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20년래 최악의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긴축정책 완화와 일자리 창출, 감세에 연정 세력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 경제 성적표에 따라 새 정부가 오래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정치절벽#레타#베를루스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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