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잔류인력 눈물의 귀환 “끝까지 공장 지키려 했는데… ”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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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걱정에 발 안떨어져 ”

“고생했다.”

27일 오후 4시 20분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CIQ). 섬유업체 화인레나운의 박운규 대표(61)는 26일 만에 남한 땅을 밟은 최연식 개성공단 법인장(48)을 부둥켜안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최 법인장도 “마지막까지 회사를 지키고 싶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따라 울었다.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두 사람은 “서글프다”며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 법인장은 경황이 없어 미처 차량 번호판을 바꾸지도 못하고 ‘림6000시’라고 적힌 개성 번호판을 달고 내려왔다. 차 내부 공간을 모두 제품으로 꽉꽉 채운 것도 모자라 천장, 트렁크, 보닛 등 운전석 앞 유리를 제외한 모든 곳에 제품을 테이프로 묶은 상태였다. 자동차 천장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움푹 찌그러져 있었다. 그는 “짐 싸는 데만 12시간이 걸렸다”며 “완제품 3000장을 들고 나왔지만 두고 온 제품은 2만 장이 넘는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해 내일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으려고 한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 “일부 업체는 벌금 물었다”

이날 최 씨를 포함해 개성공단에 체류하던 우리 인력 126명이 오후 2시 40분, 4시 20분 두 차례에 걸쳐 CIQ를 통해 귀환했다. 당초 2시부터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지체됐다. 섬유업체 A사의 법인장은 “북한에서 나올 때 미리 반출신고를 마친 제품만 싣고 나와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철수 통보를 받은 주재원들이 경황이 없다 보니 신고하지 않은 물품까지 들고 나와 북측 세관검사가 길어졌다”며 “일부 업체는 벌금도 물었다”고 전했다. 현지 설비를 관리하기 위해 남아 있는 한국전력, KT 등의 직원 50명도 29일 전원 귀환한다.

남측 근로자들은 “일부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개성공단 내부는 평온했다”고 말했다. 섬유업체 B사 현지 법인장 김모 씨는 “지난달 말부터 북한 군인들이 군복 위에 풀과 나뭇가지를 꽂은 위장막을 걸치고 다녔지만 위협은 없었다”며 “끼니때마다 라면을 먹은 것은 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반찬이 다 떨어져 맨밥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한 그는 다만 “다른 회사 직원들과 함께 지내면서 ‘곧 도산하는 기업들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덧붙였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으로부터 납품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협력업체 대표들도 CIQ에 나왔다. 예경어패럴의 박형락 대표(54)는 “현재 피해액만 2억 원”이라며 “원청업체가 개성공단에 생산을 맡기는 것을 꺼려 겨우 설득했는데 다시는 개성공단에 생산을 맡기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이날 CIQ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지에 묶여 있는 제품과 원부자재를 보호하고 입주기업들이 입은 피해를 보전해줄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협회는 또 “30일 입주기업의 방북을 승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 자산 몰수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

입주기업들은 혹시라도 북한이 개성공단 내 자산을 동결하거나 몰수하지 않을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기섭 SNG 회장은 “금강산관광이 중단됐을 땐 북측이 남측 인원을 추방했지만 이번엔 우리 정부가 철수시켰기 때문에 북한에 원부자재와 설비를 몰수할 핑계를 대준 셈이 됐다”고 걱정했다. 그는 “기업들이 두고 온 설비, 완제품, 원부자재, 또 거래처에 물어줘야 하는 금액 등을 모두 합하면 피해액이 4조 원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생계도 막막해졌다. 개성공단에 모든 생산설비를 두고 있는 섬유업체 C사는 북측 근로자가 철수한 9일 이후 생산이 아예 중단됐다. 그는 “국내외에 공장을 급히 섭외한다고 해도 원부자재를 염색, 가공해 완제품으로 만들기까지 한 달이 걸린다”며 “옷을 만들어도 어차피 철이 지나 못 팔 것이 뻔해 아예 손을 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파주=김호경·강유현 기자 whalefisher@donga.com
#개성공단#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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