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나처럼, 몇 개의 얼굴을 가진 도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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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책자/강상중 지음/송태욱 옮김/248쪽·1만3000원/사계절

강상중 교수
강상중 교수
“나에게는 몇 개의 얼굴이 있고, 일본에는 몇 개의 일본이 있고, 한국에는 몇 개의 한국이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든, 어떤 국민이든 몇 개의 정체를 갖고 있습니다.”

책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연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1998년 도쿄대 정교수가 돼 유명해진 저자는 자신 안의 여러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도쿄 이방인’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현재는 일본 세이가쿠인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대학 시절까지 ‘나가노 데쓰오’라는 일본 이름을 썼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지녔지만 주위에 털어놓지 않고 십대를 보냈다. ‘강상중’이란 본명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71년 스물한 살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다.

그는 1970년대 서울의 분위기를 독특한 비유로 옮겼다. ‘옷이 모두 풀어헤쳐져 있어 혈관이나 신경이 모조리 드러나 팔딱팔딱 뛰고 있는 바로 그런 느낌’의 서울에 비해 도쿄는 무질서한 떠들썩함이 서서히 사라져 사람 냄새를 탈색한 곳이었다. 서울을 거울삼아 도쿄를 봤을 때 도쿄가 달리 보였다고 설명하며 친절하게 독자를 이끈다.

개인적인 감회를 풍부하게 담아낸 에세이지만 장소에 얽힌 역사 설명이 충실하게 보태진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호텔 창 너머로 신칸센의 발착을 보며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던 저자가 일본에 호텔이 처음 생긴 것은 막부 말기라고 덧붙이는 식이다. 벚꽃의 명소인 지도리가후치에서 어머니의 고향 진해의 향수에 젖는다.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인이라면 벚꽃의 꽃잎처럼 아름답게 지라”며 병사의 희생을 미화한 과거를 돌아본다.

도시 곳곳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군데군데 실려 보는 맛도 있다. 하지만 사진 속 저자는 웃는 모습이 드물다. 그마저도 모두 흑백으로 처리돼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의 화려함에도 감탄하지만 저자의 시선이 마냥 명랑하지만은 않다.

전자상가가 밀집해 오타쿠(마니아)의 성지가 돼버린 아키하바라를 찾은 저자는 과도하게 풍요로워진 사회에서 개인들은 타자와 소통을 멈추고 혼자 동물적인 욕망을 채우며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시나가와 수족관에서는 갈수록 자신 안에 갇혀 사는 현대사회에 대해 사유한다. 해외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긴자 거리를 걸으면서 빈부격차는 앞으로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반적으로 책이 주는 도쿄의 인상은 깔끔하게 포장됐지만 어딘가 서먹서먹한 도시다. 하지만 규격화돼 있지 않은 개성을 찾을 수 있다. 야나카 네즈 센다기 등 세 지역을 합쳐 ‘야네센’이라고 불리는 골목길의 자그마한 절, 옛날 모습을 간직한 상점가에서 어수선한 공간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도시의 문화를 지탱하는 곳으로는 진보초 고서점가와 전통 있는 공연장인 요세나 가부키자를 꼽는다.

비교적 짧은 문장에 존칭의 표현이 쓰여 마치 일본 소설처럼 차분하고 담담한 느낌을 준다. 도시 속의 이방인이 겪는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살펴 도쿄의 개성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책이다. 2011년 일본에서 출간된 책을 옮겼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도쿄 산책자#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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