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동산 구름꽃 연못… 눈물어린 사월의 꽃잔치

  • Array
  • 입력 2013년 4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김화성 전문기자의&joy]태안 천리포수목원을 걷다

천리포수목원 연못에 어린 큰별목련 ‘빅 버사’. 수목원의 목련 400여 종 중에서 가장 많은 꽃숭어리를 피운다. 꽃송이는 12∼16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별을 닮았다. 빅 버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거대한 대포 이름. 우산처럼 활짝 펴진 모습이 ‘꽃대포’를 떠올리게 한다. 앞쪽 하얀 꽃은 백정화(단정화). 천리포=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천리포수목원 연못에 어린 큰별목련 ‘빅 버사’. 수목원의 목련 400여 종 중에서 가장 많은 꽃숭어리를 피운다. 꽃송이는 12∼16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별을 닮았다. 빅 버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거대한 대포 이름. 우산처럼 활짝 펴진 모습이 ‘꽃대포’를 떠올리게 한다. 앞쪽 하얀 꽃은 백정화(단정화). 천리포=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나는 나무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나무는 항상 하늘을 우러러 솟으며 생명력이 넘친다. 모든 사람이 나무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한다. 나의 마음은 한국 사람과 똑같다. 한복이 정말 편하고 스테이크보다 김치와 고추장이 입에 맞는다. 난 아무래도 전생에 한국인이었나 보다. 천리포수목원은 내가 좋으라고 차린 게 아니다. 적어도 200∼300년은 내다보고 시작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나무의 나이테는 1년에 1개 이상 생기지 않는다. 수목원도 마찬가지다. 내가 죽은 후에도 자식처럼 키운 나무들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길 바란다.” (민병갈·1921∼2002)
위부터 아직까지 꽃을 매달고 있는 산수유꽃, 가장 화려한 선홍빛 불칸목련, 냄새만 맡아도 몽롱해진다는 마취목.
위부터 아직까지 꽃을 매달고 있는 산수유꽃, 가장 화려한 선홍빛 불칸목련, 냄새만 맡아도 몽롱해진다는 마취목.
충남 태안군 천리포수목원 목련꽃이 드디어 터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꽃망울이 탱탱 불어터졌다. 예년보다 2주쯤 늦었다. 5월 중순까지 만발할 것이다. 연못가 버드나무 가지에 연두물이 막 오르고 있다. 꽃다지, 제비꽃, 개불알꽃 등 들꽃들도 오종종 덩달아 꽃봉오리를 열었다. 노란 수선화 꽃이 해말갛다. 산수유꽃과 매화는 이미 이울고 있다. 물 벙벙한 논에선 한낮인데도 개구리 울음소리가 왁자하다.

천리포수목원 4월은 목련꽃 세상이다. 400여 종의 전 세계 목련이 뿌리내려 산다. 1997년엔 국제목련학회 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흔히 보는 중국 원산 백목련이나 자목련은 여기에선 대접을 못 받는다. 그것 아니라도 귀부인을 닮은 우아한 목련이 수두룩하다.

잎과 함께 5, 6월에 노란 꽃을 피우는 황목련, 잎이 가느다랗고 꽃잎이 18개나 되는 별목련, 원산지 중국에서도 보기 힘든 비온디목련, 새들이 군무를 추고 있는 듯한 분홍빛 스트로베리크림목련, 꽃보다 잎이 먼저 피는 토종 산목련(함박꽃나무)과 일본목련(후박나무)…. 목련은 꽃봉오리가 5∼10%쯤 벙글 때가 으뜸이다. 타조 머리 닮은 보송보송 솜털 틈새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배를 타노라/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박목월 작사, 김순애 작곡 ‘사월의 노래’에서)
천리포수목원엔 1만4900여 종의 식물이 산다. 단연 국내 수목원 중 으뜸이다. 국립수목원보다 5000여 종이 많다. 목련나무 400여 종, 호랑가시나무 370여 종, 동백나무 300여 종 등 진귀한 보물이 수두룩하다.

빨간 잎이 노란 잎으로 변했다가 다시 초록 잎으로 바뀌는 삼색참중나무, 민병갈 선생이 세계 최초로 발견해 국제학회 호적에 올린 완도호랑가시나무, 요즘 노란 면류관 꽃을 닭의 볏같이 달고 있는, 가지가 3개로 갈라진 삼지닥나무, 봄과 가을 두 번씩 꽃을 피우는 가을벚꽃나무, 가지가 구불구불한 용트림매실나무….

요즘 화산의 용암처럼 붉게 혀를 날름거리는 불칸목련이 요염하다. 꽃사과, 꽃아그배로 불리는 프로퓨전의 향내가 아득하다. 자줏빛 꽃숭어리가 우우우 다발로 피어나고 있다. 잎 끝이 까마귀 부리를 닮은 오구(烏口)나무 열매가 팝콘처럼 주렁주렁하다. 담홍색 등대꽃이 등불처럼 어지럽게 흔들린다. 연못가 종벚나무 수퍼바가 앙다문 선홍색 꽃잎을 사르르 벙글고 있다. 영락없는 진홍 립스틱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바야흐로 꽃으로 천지개벽 중이다. 꽃 폭죽이다.
▼ 초가 기와 열두채 오종종… 한옥서 하룻밤 오붓하게 ▼


천리포수목원엔 초가집 한 채(사진), 기와집 열한 채가 있다. 이 중 다섯 채의 기와집은 고옥들을 옮겨온 것이다. 해안 언덕 위 소사나무집은 서울 인왕산 아래 서촌의 고택을 옮겨 지은 것으로 민 선생이 10년 넘게 머물렀다. 그는 한국은행 시절 서울 생활에서도 이곳저곳 한옥을 임차해 한복을 입고 생활했다. 목련나무집은 1983년 경북 안동 임하댐 공사로 헐리게 된 안동 김씨 종갓집을 해체, 복원한 것이다. 다정큼나무집으로 불리는 초가집은 100년이 넘었다.

그는 오래된 절집을 좋아했다. 주위 자연과 있는 듯 없는 듯 잘 어우러졌다는 것이다. 그 대신 ‘한국의 대부분 교회와 성당 건물은 귀물(鬼物)이며, 맘에 드는 집은 강화도 한옥 성당 등 성공회의 세 건물밖에 없다’(동아일보 1963년 5월 5일자 ‘서사여화’)고 했다. 이로 인해 그는 기독교신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민 선생은 조선 선비의 삶을 꿈꿨다. 그가 20여 년 동안 살았던 천리포수목원의 후박나무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후박나무집은 서울 홍은동 고택을 그대로 옮겨 지은 것. 이겸로의 글씨와 이응로의 동양화가 걸려 있는 안방, 오세창이 쓴 여섯 폭의 서도병풍이 놓인 응접실, 자주색 공단 보료와 서안 문갑 등. 그는 한문에 능했고 붓글씨를 즐겼다.

일반인도 수목원 안의 한옥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다. 일반인이 들어오지 않는 새벽과 저녁에 오붓한 산책을 만끽할 수 있다. 밤새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고, 조잘대는 새 소리와 함께 동이 튼다. 새벽안개에 젖은 목련꽃은 아슴아슴하다. 사전 예약은 기본. 후원회원 가입신청도 받는다. 후원금은 기부금 처리로 세제혜택을 받는다. 회원은 한옥게스트하우스 할인혜택과 매년 후원회원의 날에 참석해 미공개된 곳까지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다. 041-672-9985, www.chollipo.org

▼ ‘푸른 눈의 나무할배’ 40년 빗장 걸고 에덴동산 가꿔… 수목원에 삶 바친 민병갈 선생▼


천리포수목원은 ‘푸른 눈의 한국인’ 숲뫼(林山) 민병갈 선생(사진)의 에덴동산이다. 그의 미국 이름은 칼 밀러. 1979년 귀화해 ‘여흥 민씨’ 족보에까지 올랐다. 그는 1945년 9월 미국 해군 일본어 통역장교로 이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금세 한국인의 순박한 모습과 자연, 풍물에 푹 빠졌다. 한 달 만에 김치가 입에 쩍쩍 달라붙었다. 기와집을 보면 고향에 온 듯 편안했고 한국인을 보면 누구나 친밀감이 들었다. 온돌에서 자야 잠이 잘 올 정도였다. 결국 그는 군복을 벗고 주한미군 군정청 관리를 거쳐 한국은행 고문으로 이 땅에 뿌리를 내렸다.

민병갈은 모든 돈과 몸, 마음을 수목원 가꾸는 데 쏟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꽃과 나무 가꾸는 데만 힘썼다. 한국식물도감이 닳고 닳도록 공부했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씨앗과 묘목을 들여왔다. 그는 평일에는 서울에서 돈 벌고, 주말에는 천리포에서 나무를 심었다. 토종 완도호랑가시나무를 처음으로 찾아낸 것도 바로 그였다.

그는 골프를 치지 않았다. 멀쩡한 자연을 파헤쳐 만든 골프장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자연지상주의자였다. 천리포수목원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꺼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이 몰려오면 나무가 다칠까 봐 걱정했다. ‘나무는 생산자, 동물은 소비자, 인간은 파괴자’라는 그의 말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수목원을 ‘나무가 주인인 나무들만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의 사후인 2009년 3월 일반인에게 빗장을 풀 때까지 천리포수목원은 40년 동안 비밀정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나 회원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숲이 아니라 나무를 위한 숲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민 선생의 뜻이었다.

천리포수목원에선 나무들끼리 삶을 위해 싸우다가 죽는 것은 그대로 놔둔다. 사람이 굳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등나무가 소나무를 칭칭 감아 올라가 소나무가 말라죽어도 본체만체한다. 현재 개방되는 곳은 61만8397m²(약 18만7000평) 중 2만여 평. 7개 구역 중 한 곳이다. 나머지는 종 보전을 위해 계속 제한적으로만 문을 연다.

민 선생은 2002년 직장암으로 눈을 감았다. 그의 유언장은 간명했다. “나의 전 재산을 천리포수목원에 유증한다.” 그는 하루에 담배 서너 갑을 피우는 골초였다. 술도 독주를 즐겼다. 천리포수목원은 2000년 4월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칭호를 받았다. 세계 12번째, 아시아에선 처음이었다.

민 선생은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올랐다. 여섯 분 중 외국인 출신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김이만 나무할아버지, 현신규 육종학자, 임종국 장성편백나무 숲 조성가, 최종현 SK그룹 창업주가 그 면면이다. 민 선생은 1989년 원예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영국왕립원예협회의 비치메달도 받았다.

이상훈(오른쪽) 최수진 씨 부부.
이상훈(오른쪽) 최수진 씨 부부.
▼ 풀-나무 자식처럼 돌보는 수목원 지킴이, 이상훈-최수진 커플 ▼


천리포수목원 이상훈 관리팀장(35)과 최수진 홍보팀장(32)은 사내커플이다. 살림집도 수목원안의 사택. 두 사람 모두 식물에는 문외한이었다. 대학 전공이 이 팀장은 경영학, 최 팀장은 실내 디자인으로 나무와는 관련이 멀다.

하지만 둘 다 어릴 적부터 숲을 사랑하고 풀과 나무를 좋아했다. 최 팀장은 독학으로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까지 땄을 정도. 남편 이 팀장은 수목원이 좋아 2003년 무작정 천리포 문을 두드렸다. 최 팀장도 2008년 다른 직장에 있다가 기어이 나무 곁으로 올 수 있었다. 비주류이지만 ‘나무사랑’ 하나만 믿고 무작정 뛰어든 것이다.

2010년 두 사람은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했다. 31개월 된 딸까지 두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수목원에서 자고 먹고 생활한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일년 내내 숲 속의 풀, 나무들과 산다. 이 세상에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게 어디 있을까.

“둘 다 민병갈 원장님처럼 천리포수목원의 최고 책임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아직 실력으로는 어림없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요? 민 원장님도 마흔아홉에 나무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아 참, 그렇게 되면 우리 부부가 서로 라이벌이 되나요? 하하하!”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