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재미에 빠진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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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 또는 불구경이라고 한다.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라는 뜻의 재미를 왜 남의 갈등과 불행에서 얻는 것일까. 극단의 재밋거리를 찾다 보니 마침내 비극에서 즐거움을 얻는 묘한 일이 벌어지는 것. 정상이라 말하기 어렵다.

1890년대 미국의 신문재벌이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기자들에게 매일 아침 신문에 팔이나 다리가 잘린, 혹은 목이 달아난 시체 사진과 기사를 싣도록 다그쳤다. 오로지 재미있는 신문을 위한 극단의 선택이었다. 허스트는 연예인이나 명사들의 스캔들, 가짜 인터뷰, 만화 등 재미만을 좇는 기사로 언론의 선정주의를 이끌었지만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시민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가벼운 읽을거리로는 모자랐다. 그 이상의 새로운 맛을 내지 않으면 더이상 신문을 팔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미는 호기심을 넘어 자극과 충격이 되어야만 했다. 극악무도한 범죄 끝의 시체를 찾기 위해 기자들은 뉴욕 뒷골목은 물론이고 하수구까지 뒤져야만 했다. 재미의 끝판은 잔혹함이었다. 허스트와, 그의 치열한 경쟁자였던 조지프 퓰리처가 지배했던 미국 언론은 재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을 통해 국민을 깨어 있도록 만든다는 언론의 존재가치는 무의미했다. 신문에서 이성과 지성이 실종되었다. 미국 사회의 혼돈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도 ‘재미’에 사로잡혀 있다. 재미와 흥미는 원래 스포츠나 연예오락의 본령. 지성이나 예술에도 재미의 요소가 없을 수 없으나 본질은 아니다. 지성과 예술은 진지함과 참을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성도, 예술도 재미의 지배를 받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가벼운 즐거움의 추구가 지나치다. 교수나 종교인들이 언론이나 소셜미디어, 책을 통해 국민의 감성을 건드리는 얄팍한 말장난으로 인기를 얻으려 한다.

연예오락은 재미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졌다. 웃고 즐기는 것이 더이상 재미는 아니다. 재미의 강도가 갈수록 세지면서 자극과 충격, 도발, 감상이 재미로 변질되었다. 방송의 연예오락은 이른바 막장 드라마와 극단으로 과장되거나 눈물이 버무려진 신변잡사 고백이나 남의 사생활 폭로가 주를 이룬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파렴치범도 독특한 얘깃거리를 가졌거나 말솜씨가 좋다면 재밌게 시청자들이 본다는 이유로 텔레비전에 등장시킨다. 재미만 있으면 어떤 내용이든, 재미를 가졌으면 어떤 과거든 용서받는 세상이 되고 있다. 방송의 연예오락은 재미를 위해 윤리나 도덕, 법을 스스럼없이 무시하고 있다.

3월 열렸던 ‘국회방송’ 발전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논의의 초점은 ‘재미’였다. 국회 의정활동을 중계방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회방송의 시청률은 0.067%. 적지 않은 돈을 쓰면서 지극히 시청률이 낮은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국회의원들과 전문가들의 지적과 비판에 국회방송은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지 못하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국회방송을 재밌게 만들라고 하면 그 재미의 내용과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근본적으로 국회 의정활동이 재미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이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 했으니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최루탄 터뜨리고, 치고받고 멱살잡이하는 날치기 소동을 매일 벌여야 재미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처럼 저잣거리의 화제가 된 청문회가 날마다 열려야 재밌게 국회방송을 볼 것인가.

국회방송은 미국의 의회전문 중계방송인 C-SPAN을 본뜬 것이다. 그러나 C-SPAN은 시청률에 매달리지 않는다. 재미를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립자인 브라이언 램은 “우리는 특별히 재미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특정 시점에 의회 등이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어떤 날은 지겹고, 어떤 날은 흥분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꼭 C-SPAN의 예가 아니더라도 국회방송 같은 공공(公共)방송에 재미를 요구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이다. 문제는 ‘재미’를 판단하는 관점이다. 미국의 의원들은 우리나라 의원들처럼 멱살잡이하거나 고함을 지르며 싸우지 않는다. 우리 식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올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24%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C-SPAN을 시청한다는 것. 한국의 국회방송 시청률과는 엄청난 차이다. 한국과 미국의 ‘재미’에 대한 기준이 그만큼 다르다. 깨어 있는 국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라면 따분할지라도 연예오락 프로그램만큼 재미있게 보는 국민들이 존재할 때 공공방송의 가치가 살아난다 할 것이다.

공공기관 등 학교 바깥으로부터 특강 요청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재미있는 강의에 대한 부담을 가진다. 대상이 누구든 교양강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미라고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의식과 사고를 깨우치는 내용보다는 가벼운 정보나 얘깃거리로 부담 없이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강의를 원한다. 그러니 강의 주제가 무겁게 보이면 아예 작정하고 잠을 청하는 수강생들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여러 내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은 인공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처럼 지성이든 연예오락이든 심심함을 못 참는다. 그저 가볍게 웃고 즐기는 것이 좋다. 이젠 즐거움을 넘어서, 보다 강하게 감성을 후비거나 두들기는 자극과 충격의 재미에 많은 국민이 더 만족해한다. 재미있는 기사를 위해 참혹한 시체를 찾는 꼴이다.

한국 사회는 변질된 재미에 이미 중독되어 있다. 결과는 지적 능력의 쇠퇴가 될 것이다. 고민하지 않고 인내하지 않으면 어떻게 지식을 얻고 인식력과 사고력을 키울 것인가. 생각이 없으면 지성이 생기지 않는다. 지성이 없으면 창조가 없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재미#스캔들#가짜 인터뷰#만화#선정성#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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