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묘 등장… 이래도 될랑가몰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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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로 벌초 힘들고 멧돼지 습격에 골머리…
선산 관리 고육책… 인조잔디 깐 곳도
성균관측 “잘했다 하기는 어려울 것” 담당공무원 “규정 위반여부 검토”

24일 전남 고흥군 한 야산의 문중 선산에서 묘 9기와 그 주변이 시멘트로 덮여 있다. 광남일보 제공
24일 전남 고흥군 한 야산의 문중 선산에서 묘 9기와 그 주변이 시멘트로 덮여 있다. 광남일보 제공
시멘트로 씌워진 기상천외한 묘들이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농어촌 인구 고령화로 봉분을 관리해줄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진 데다 멧돼지가 묘를 파헤치는 일이 잦아 고육지책으로 나온 아이디어다. 매장문화의 혁신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조상을 섬기는 정신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24일 전남 고흥군의 한 마을 입구에 자리한 야산. 300m²(약 90평) 넓이 한 문중의 선산 묘 12기 중 9기가 시멘트로 덮여 있다. 봉분은 물론이고 그 주변까지 온통 흰색이다. 해당 선산은 100여 년 전 조성된 것이다. 최근 봉분과 주변 잔디에 시멘트를 입히는 데 1700만 원 정도가 든 것으로 알려졌다. 시멘트로 덮인 9기는 해당 문중 장손 A 씨의 직계 조상 묘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멘트가 덮이지 않은 3기는 A 씨의 친인척 묘로 그 자식들이 관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마을 이장 B 씨(75)는 “이달 5일 한식 때 선산에 시멘트 입히기 공사를 했다”며 “A 씨가 조만간 시멘트 위에 풀색 페인트를 칠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고령인 자신도 해마다 3차례씩 벌초를 하지만 갈수록 힘이 들고 최근에는 멧돼지 습격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 A 씨의 행동이 이해된다는 입장이었다.

A 씨의 문중 사람들이 집성촌을 이룬 마을은 시멘트 선산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마을 주민 75명 중 50대가 1명, 60대가 3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70, 80대다. 마을 이장 C 씨(67)는 “멧돼지가 A 씨의 선영을 2, 3차례 파헤친 것으로 알고 있다”며 “70대인 A 씨는 도시에 살면서도 시제에 꼭 참석할 정도로 선산 관리에 신경썼다”고 말했다. 그는 “선산조차 찾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A 씨처럼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덧붙였다. 김진환 고흥군 노인복지계장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봉분 주변에 잔디나 풀을 심도록 규정돼 있다”며 “규정 위반 여부를 검토해 원상회복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남 해남군의 일부 묘지도 봉분을 제외한 부분에 시멘트가 입혀지는 등 농어촌에 시멘트 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묘에 인조잔디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잡초가 많이 자라 관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고흥군 풍양면 한 문중 납골묘 내 7m²(약 2평)는 사시사철 푸른 인조잔디가 심어졌다.

시멘트 묘 등장을 놓고 갑론을박도 벌어진다. 성균관의 한 관계자는 “딱히 뭐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잘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성묘 때 묘에 뿌린 술 냄새를 맡고 멧돼지가 묘를 파헤치는 만큼 제사 술을 뿌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시멘트 묘를 조성할 바엔 화장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고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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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묘#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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