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우리도 빌 게이츠를 키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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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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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 경제’의 성공 사례로 빌 게이츠 미국 테라파워 회장이나, 소설 ‘해리포터’를 쓴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을 꼽고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빌 게이츠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 모델로서 빌 게이츠 회장 같은 분이 계시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누구도 상상 못했던 정보기술 혁명을 주도한 빌 게이츠는 670억 달러(약 74조 원)의 재산을 보유한 세계 2위의 부자다.

조앤 롤링은 영국이 처음 내세웠던 ‘창조 경제’에서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소설 ‘해리포터’는 전 세계에서 4억 부 넘게 팔리면서 영화 게임 캐릭터 등 관련 산업으로 부가가치 창출을 이어갔다. ‘싱글 맘’에다 정부의 실업수당을 받으며 가난하게 생활하던 롤링은 이 작품으로 단숨에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를 지닌 거부(巨富)가 됐다. 그를 배출한 영국은 ‘문화 선진국’ 지위를 더욱 단단히 다졌다. 빌 게이츠와 조앤 롤링은 이 시대에 상상력 창의력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갖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박근혜정부의 ‘창조 경제’는 우리도 비슷한 성공 모델을 많이 만들어내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구체적인 인재 육성 방안으로 젊은 세대에게 꿈과 끼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 되는 ‘지식 생태계’에 관한 문제다. 국민 사이에 지식과 정신문화의 힘이 중시되고 있는지, 책 읽는 문화는 보편화되어 있는지, 학문과 연구 활동은 원활하게 이뤄지는지, 도서관 같은 지식 인프라는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빌 게이츠와 조앤 롤링을 만들어낸 원동력도 독서의 힘, 지식의 힘이었다. 빌 게이츠의 부모는 어린 시절 그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줬다. 빌 게이츠 스스로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동네 도서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다. 조앤 롤링도 독서광이었다. 부모가 일찍부터 그에게 책을 읽어줬던 영향으로 6세 때 처음 습작을 했다. 대학 시절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심취했다.

한국에서 독서와 관련된 각종 통계 수치는 역대 최악의 상황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 가구가 책을 구입하는 데 지출한 비용은 한 달 평균 1만9026원으로 2003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았다. 2011년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66.8%로 1994년 86.8%에 비해 20%포인트 추락했다. 독서율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독서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국내 신간 도서의 발행 부수는 2011년보다 20.7% 감소했다. 모든 수치가 무서운 속도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책을 멀리하는 추세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한국은 유독 심하다.

요즘 대학 구성원들의 절실한 이슈로 부상한 시간강사법 문제는 우리나라 지적 풍토의 천박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2011년 말 국회는 대학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시간강사를 ‘강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1년 이상의 고용을 보장하고 4대 보험 혜택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 입법이었다. 내년부터 이 법이 시행되면 대학들은 경비를 줄이기 위해 시간강사를 여러 명 쓰지 않고 한 명의 강사에게 여러 강의를 맡길 방침이다. 시간강사들의 대량 해고 사태가 불을 보듯 뻔하다. 겨우 살아남은 강사들은 세부 전공이 아닌 과목까지 수업을 담당해야 하므로 강의의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시간강사 자리가 줄어들면 학문 후속 세대들은 갈 곳이 없어지고, 지식 사회의 중추 격인 대학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런 터무니없는 법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버젓이 통과됐다. 최근 대학과 관련해 ‘반값 등록금’이나 입시제도 변경에 대한 목소리는 나오지만 시간강사법에 대해서는 관심 갖는 사람조차 별로 없는 형편이다.

빌 게이츠를 길러냈고, 대표적인 지식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공공 도서관 역시 한국은 취약한 편이다. 인구 10만 명당 공공 도서관 수는 주요 국가 중에서 하위권이다. 한국은 1.24개의 공공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5.39개, 영국은 7.43개, 핀란드는 15.8개에 이른다. 지식 사회의 기반 면에서 한국이 여러모로 부족한 것은 선진국과의 경제적 격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국가 전체의 인식이다. 지식의 힘을 중시하고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싸이 김연아 류현진 같은 대중문화와 스포츠 스타에 열광하고 있다. 이들과 같은 인재 창출도 더없이 소중하지만 다수의 창조적 인재들은 역시 전통적인 지적 토양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국가 최고지도자는 지식 생태계가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앞장서야 할 책임이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창조 경제#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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