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깎는 장인들의 골목… 제조업 풀뿌리가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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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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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산업 클러스터의 위기… 서울 문래동 철공소골목 현장

“기술후계자 못찾아 고민”

11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선반업체 유수기공에서 유대수 사장(왼쪽)과 황명철 공장장이 대형 굴착기에 들어갈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유 사장은 “연습용 미사일을 만들 정도로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후계자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기술후계자 못찾아 고민” 11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선반업체 유수기공에서 유대수 사장(왼쪽)과 황명철 공장장이 대형 굴착기에 들어갈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유 사장은 “연습용 미사일을 만들 정도로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후계자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기자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이 정도면 100분의 9(0.09mm) 정도 되겠네요.”

11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골목. 99m² 남짓한 선반업체 ‘유수기공’의 사업장에서 굴착기 부품을 만들던 유대수 사장(56)은 이렇게 말한 뒤 계측기로 기자의 머리카락 굵기를 쟀다. 그는 계기판에 ‘9’라는 숫자가 뜨자 “맞죠?”라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한눈에 머리카락 굵기까지 알아맞히는 유 사장은 3년 전부터 군(軍)에서 쓰는 연습용 미사일 외피(外皮)를 만들고 있다. 그는 “실전에서는 수입품을 사용하지만 연습 때는 실제 미사일 구조와 똑같은 국산을 쓴다”며 “문래동 금속가공업체들은 영세하지만 미사일을 만들 만큼 기술에선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0.05mm 오차도 용납 않는 8m 미사일

유 사장이 미사일 외피 조각을 만들면 다른 업체에서 추적장치, 추진축 등을 내부에 채워 갖다 준다. 그는 되받아온 미사일 조각을 조립한 뒤 표면을 매끄럽게 깎아내는 작업도 한다. 그는 “이렇게 하면 약 8m 길이의 미사일이 완성된다”며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펴고 깎아야 하지만 100분의 5(0.05mm)도 어긋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한 유 사장은 1973년부터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서 월급 8000원을 받고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공장을 전전하며 펌프, 주물, 금형 등 기술을 배워 1986년 문래동 1가에 지금의 유수기공을 세웠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과 구로구 신도림동 일대에는 선반, 밀링, 도금 등 유수기공과 비슷한 1600여 개의 금속가공업체들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유 사장은 “대량생산은 어렵지만 기술력이 있는 데다 몇 군데만 거치면 제품 하나를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업체가 밀집해 주요 기업들도 이곳에서 시제품들을 만든다”고 전했다.

○ 20대, 월급 적어도 음식점 취업

그는 40년 가까이 쌓아온 기술이 끊길까봐 걱정이다. 현재 유수기공의 직원은 그와 아내, 올해 53세인 황명철 공장장이 전부다. “여러 차례 지역 정보지에 구인공고를 냈지만 전화하는 사람은 40대 후반이나 50대밖에 없더군요. 대형 선반 일을 하면 한 달에 300만∼400만 원을 벌 수 있고, 나이 들어도 기술로 먹고살 수 있는데 젊은이들은 ‘차라리 폼 나는 음식점 서빙 일을 하겠다’며 외면합니다.”

그는 “영세 금속가공업체들을 방위산업체로 지정해 주면 청년들은 기술을 배우고 업체는 인력난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재개발 소식도 걱정거리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문래동 1∼4가 일대 준공업지역 27만9472m²를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세업체들은 재개발하는 동안 옮길 곳을 찾기 쉽지 않다”며 “재개발이 진행되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 소공인을 명장으로 육성해야

한국소공인진흥협회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와 구로구에는 1663개의 금속가공업체가 몰려 있다. 중구와 동대문구에도 각각 518개, 163개가 모여 있다. 이 밖에 중구에 인쇄소 1500개, 종로구에 간판업체 300개, 봉제업체 1500개, 보석가공업체 500개, 성동구에 제화업체 400개 등이 모여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다른 클러스터도 문래동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박동희 성동수제화협회장은 “성수동에서는 내로라하는 명품 수제화를 만들지만 청년들이 기피하다 보니 최근에는 사장들이 청년들을 데려다 놓고 5개월 코스로 무료 강의를 해줄 정도”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제조업의 숨은 공신으로 꼽히는 마치코바(町工場·‘동네 공장’이라는 뜻)처럼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책은 생계형 소매상인에 집중돼 있고 기술 노하우 기반의 ‘소공인’을 육성하는 정책은 거의 없다”며 “기술의 매뉴얼화, 후계자 양성, 전용 공장 건립 등 소공인을 명장(名匠)으로 육성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미사일#클러스터#문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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