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침묵하는 다수를 깨운 창조적 학교폭력 예방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3일 03시 00분


‘2학년 학생이 물탱크 쪽에서 쭈그려 있는 걸 보았습니다.…저희 학교에도 따돌림이 있는 것 같아요.’ ‘○○가 군용 칼 2개를 들고 다녀요.’ 충북 A고교에서 진행된 창의적인 학교폭력 예방 실험이 주목받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과 A고는 올 2∼4월 두 달간 익명으로 쌍방향 대화가 가능한 모바일 메신저 프로그램을 활용해 학생들이 교사와 상담하도록 했다.

이 실험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에 있다. 익명 모바일 메신저는 신분 노출이 두려워 침묵하던 대다수 학생의 소통창구가 됐다. 두 달간 7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해 155건의 의견을 냈다. 반신반의하던 학생들은 폭력과 따돌림, 담배 음주 절도 같은 동료 학생의 일탈 행동은 물론이고 개인사까지 상담했다. 이번 시도는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에 도움이 됐다. 친구의 선행이나 교사의 장점을 칭찬하는 긍정적인 내용이 전체의 3분의 1이나 될 정도로 학생들은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A고 사례는 침묵하는 다수의 학생이 학교폭력을 막는 참여자로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정보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학교폭력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온 한 벤처기업가 덕분에 가능했다. 이 벤처기업가는 올해 1월 창업해 익명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모바일 메신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A고 이모 교사는 과거 익명 문자메시지를 활용해 제보를 받았지만 발신자가 자기 학교 학생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담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그런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다.

전국 초중고교생 10명 중 1명꼴로 학교폭력에 시달린다. 교육부 장관이 방문하고 학교폭력 예방 모범학교로 선정된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투신자살을 하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약자를 도와주기는커녕 평범한 학생들이 일진의 강요로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과 ‘폭력의 집단화’도 큰 문제다.

학교폭력전담 경찰관(스쿨폴리스)을 배치하고, 폐쇄회로(CC)TV를 늘린다고 해도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을 모두 막기는 어렵다. 학생과 교사들의 적극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하면 학생과 교사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A고의 교훈이다.
#학교폭력#예방교육#익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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