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지? 치매엄마 넋두리에 눈물나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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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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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50년 손숙의 ‘나의 황홀한 실종기’ ★★★★

치매 환자인 윤금숙(손숙)은 “내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울부짖는다. 극단 산울림 제공
치매 환자인 윤금숙(손숙)은 “내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울부짖는다. 극단 산울림 제공
솔직히 뻔하다. 정신 나간 엄마는 사탕을 빨며 헛소리를 하고, 딸은 그런 엄마를 붙들며 당황하고, 의사는 그러건 말건 기계적인 질문만 쏟아내는 그런 뻔한 치매 환자 다이얼로그….

‘나의 황홀한 실종기’는 달랐다. 극단 산울림이 손숙 연기 50주년을 맞이해 연출가 임영웅 씨와 함께한 작품이다. 임 씨의 부인인 불문학자 오증자 씨의 첫 창작극이기도 한 이 작품은 80번째 생일을 맞은 치매 환자 윤금숙(손숙)이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딸(서은경)과 의사(박윤석), 간병인과 함께 재건축된 옛날 집을 찾으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았다.

무대는 달랑 테이블 하나와 의자 3개가 전부다. 이곳에서 쉴 틈 없는 3인의 대화가 시작된다. 의사는 “이름이 뭐죠?” “지금 계절이 뭐죠?” 같은 차가운 질문을 쏟아낸다. 이에 어눌하게 답하던 윤금숙의 기억이 딸의 기억과 맞춰지면서 깊은 영혼의 울림이 흘러나온다.

조명 연출과 대사에 숨겨진 메타포도 주목할 만하다. 베개를 품에 안고 쪼그려 앉아있던 윤금숙의 머리 위로 핀포인트 조명이 켜지면 그는 정신이 돌아온다. 앙칼진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옛 기억을 토해낸다. ‘꽃무늬 원피스’ ‘장독대’ ‘나비’ ‘툇마루’ 같은 행복했던 옛 기억을 상징하는 메타포가 관객의 향수를 자극한다.

치매 환자가 털어놓는 그의 인생은 중장년 여성의 감성을 툭툭 건드린다. 딸은 까맣게 잊어버렸겠지만 윤금숙의 마음에 못으로 박혀있던 남편의 외도, 네 살 때 죽은 막내아들 이야기가 극의 중심을 이끈다. 90여 석인 산울림소극장 공연 최초로 티켓가격을 5만 원으로 책정하는 모험을 감행했지만 비가 내린 20일에도 50대 주부 단체 관객으로 객석은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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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까지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02-334-5925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나의 황홀한 실종기#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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