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과제서 슬그머니 꼬리 감춘 ‘낙하산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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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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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장 인사-코리아센터 등 부처 업무보고서 잇단 삭제-축소
예산확보 문제-정치적 판단도 작용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월 말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 코리아센터를 짓겠다고 밝혔다. 코리아센터에는 공연장, 한류체험관, 도서관 등이 들어서며 한국문화원도 입주해 현지인들에게 한국 문화와 관광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라는 것.

하지만 지난달 28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한 문화체육관광부는 파리는 빼고 뉴욕 센터 추진 일정만 보고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21일 “파리는 예비타당성을 조사 중인데 건립비용 800억 원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당초 100일 계획에 포함시켰던 뉴욕 센터 착공도 시공사 선정이 지연되자 하반기로 미뤘다.

정부 부처들이 대부분 업무보고를 마무리한 가운데 적잖은 국정과제들이 업무보고에서 빠지거나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대외적으로 ‘국정과제 100% 이행’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들은 내부적으로 ‘현실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배포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연평균 근로시간을 202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국정과제 목표는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116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423시간이나 많다.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은 현실적이지 않고 부작용도 많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체부는 전 국민 대상 스포츠 체력 인증제 도입 시기를 2013년(국정과제)에서 2015년(업무보고)으로 늦췄다. 국방부는 업무보고 자료에서 ‘국가 재정증가율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국방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국정과제 내용을 제외했다.

공약에서 국정과제, 업무보고를 거치며 점차 수위가 낮아진 것도 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가 연구개발(R&D)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정과제에서는 ‘5%’ 부분이 사라지고 ‘국가 R&D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내용만 포함됐다. 미래창조과학부 업무보고에서는 다시 ‘국가 R&D 기초체력을 강화하겠다’는 표현으로 완화됐다. 이처럼 수위가 낮아진 것은 예산 때문이다. 정부는 ‘R&D 5%’ 공약을 지킬 경우 올해 16조9000억 원인 정부 R&D 예산이 2017년 21조8000억 원까지 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표현이 완화된 사례는 또 있다. 인수위는 초중고 학급당 학생 수를 OECD 상위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국정과제를 발표했지만 교육부는 ‘상위’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OECD 국가 수준 감축’으로 수위를 낮췄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꺼번에 교원을 확충할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다”며 “2020년 혹은 그 이후까지 달성할 중장기 과제”라고 말했다.

정치적 이유로 실종된 국정과제도 있다. 인수위는 “공공기관 낙하산을 근절하겠다”며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강화 △임원추천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주무부처 임명권자의 간섭 배제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선 관련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최근 인수위 출신인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등 새 정부 관련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가면서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된 것.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사라진 국정과제도 적지 않다. 남북 환경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그린 데탕트’ 구상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제목만 남고 ‘개성공단 내 신재생에너지 단지 조성’ 등 세부 내용이 모두 사라졌다.

장원재·손영일 기자 peacechaos@donga.com
#국정과제#인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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