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현진]보스턴 폭탄테러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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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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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뉴욕 특파원
박현진 뉴욕 특파원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교포들이 가장 걱정한 것은 북한의 연루 여부였다. 북한이 미 본토에 대한 공격까지 언급하면서 전쟁 위협이 최고조로 이른 직후라 당연했다. 미국 언론도 해외 테러조직의 소행에 무게를 뒀다. 알카에다가 저지른 12년 전 9·11테러의 상흔이 아직도 깊게 남아 있어서다. 미 언론은 범인들이 어떤 첨단 폭탄을 사용했을지를 놓고 각종 분석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렇듯 사건 초기에만 해도 미국 바깥과 전문 테러집단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첫 반전은 사건 다음 날 일어났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보스턴 경찰이 폭발물의 정체를 ‘압력솥 폭탄’이라고 확인했다. 압력솥에 뇌관과 장약 및 각종 금속 파편 등을 채워 넣은 조잡한 사제(私製) 폭탄이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제조방법을 찾아내 100∼200달러만 들이면 만들 수 있다. 해외 테러집단뿐 아니라 개인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외로운 늑대’로 불리는 개인 테러리스트의 소행일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사건은 이틀 만에 두 번째 반전으로 이어졌다. 용의자는 전문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주위에서 평범한 생활을 했던 26세와 19세의 젊은 형제였다. 러시아에서 이민을 오기는 했지만 10년 넘게 각각 미 영주권과 시민권을 갖고 이웃집의 미국인으로 살아왔다. 가까운 어느 누구도 그들의 범행이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사건의 내막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지난해 12월 만난 한 미래학자의 경고가 떠올랐다. 미국의 대표적 미래컨설팅회사 가운데 하나인 퓨처스그룹의 설립자인 테드 고든은 당시 미래의 가장 큰 위협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처음 접하는 ‘시매드’라는 용어를 되풀이했다. 바로 ‘개인 대량살상무기(SIMAD·Single Individual Massively Destructive)’였다. 미래학자의 가장 뜨거운 연구 분야라고도 했다. 그는 평범한 개인이 습득할 수 있는 무기가 자동소총에서 폭탄, 생화학 무기, 유전자 무기로 진화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제조정보와 집에서 직접 정교하게 만들 수 있게 해 줄 3D프린터의 출현이 발판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실제 알카에다는 2010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을 겨냥해 ‘엄마의 부엌에서 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올리기도 했다. 개인이 직접 무인비행기(드론)를 만드는 일은 이미 현실화했다. 당시만 해도 미래학자의 예견을 영화에 나올 일 정도로 치부했지만 이번 테러를 접한 뒤 다가오는 무게가 다르다.

개인대량살상무기가 창이라면 방패가 무엇일지도 이번 보스턴 테러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를 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4일 만에 두 명의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은 사살, 다른 한 명은 검거됐다. 빅 데이터의 힘이었다.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사건 관련 분석 자료만 영화 1만여 편에 맞먹는 10테라바이트 분량이라고 전했다.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600여개와 각종 통화기록, 목격자들이 제공한 사진과 동영상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용의자는 이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개인 사생활 보호를 놓고 논란은 여전하지만 감시 카메라의 위력이 다시 한 번 발휘된 셈이다.

하지만 감시 카메라만으론 테러를 막을 수 없다. 개인대량살상무기 시대에 각국 정부의 더 큰 과제는 두 얼굴을 가진 ‘이웃집 테러리스트’를 사전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미 테러 당국이 이번 사건으로 고민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정부로서도 이 고민이 먼 나라의, 또 먼 훗날의 일이 아닐 것이다.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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