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이진석 기자의 Car in the Film]가슴 깊이 자고 있는 야성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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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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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즈모빌 ‘98’/ 택시 드라이버

출근길 택시의 뒷좌석에 앉아 멍하니 차창 밖을 내다보면 수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도무지 바뀔 줄을 모르는 이 풍경을 언제까지 보며 살아가야 할까.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인파 속 내가 주인공일 수는 없는 걸까. 뭐 이런 푸념들 말이죠.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야성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사회에 길들여지며 어느샌가 잃어버린 야성이 갑작스레 치솟아 오르는 순간, 평범한 주위의 풍경은 빠르게 변합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1976년 작 ‘택시 드라이버’는 누구라도 갖고 있을 법한 인간의 불안정한 내재심리를 폭발적으로 터뜨립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주인공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 분)는 쳇바퀴를 도는 쥐처럼 매일 밤 ‘옐로캡’ 택시의 운전대를 잡고 차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퀭한 눈에 비치는 뉴욕의 밤거리는 쏟아지는 빗물로도 씻어낼 수 없을 만큼 더럽고 추악한 세상입니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밀어낸 트래비스는 자신을 어린 창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 분)의 구원자라 여깁니다. 삶의 터전이던 택시는 포주의 피로 물들고 세상은 트래비스를 영웅으로 떠받들기 시작합니다. 거리의 자경대로 나서며 “여기 더이상 참지 않겠다는 남자가 있다”며 권총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정의와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머리로는 옳은 일이 아니라지만, 자연스레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가슴 깊이 잠자고 있는 야성을 자극합니다. 그마저도 잠시뿐, 호수에 던진 돌멩이 하나가 파도를 부르기엔 역부족입니다.

1970년형 올즈모빌 ‘98’은 트래비스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시작한 이 위대한 자동차업체는 제너럴모터스(GM) 산하로 들어가며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시대를 호령했지만 판매 부진을 이유로 2004년 폐기됐습니다. 만약 올즈모빌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의를 갖고 야성을 일깨웠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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