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민주당, 거울 속 맨얼굴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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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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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거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용기가 필요하다. 정치판은 더 그렇다. 작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미국의 공화당과 한국의 민주당이 나란히 패인을 분석한 대선평가 보고서를 낸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두 당은 두 번 연속 집권한 뒤에 두 번 연속 집권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처지가 비슷하다.

미국 공화당의 보고서는 두 가지 패인을 지적했다. 공화당이 국민에게 서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고 인식된다는 점과 인구가 급증하는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그리고 젊은층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민심이 변한 만큼 공화당이 그에 맞춰 기존의 보수적인 원칙에서 물러나 중도로 타협하지 않는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주간 ‘미래한국’ 최근호 참고)

16일 미국 상원은 11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불법 체류자들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구제하는 내용의 이민개혁법안을 공개했다. 200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법안 주도자 중 한 명이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은 동성결혼 지지도 천명했다. 공화당 사람들이 대선보고서의 권고대로 이미 ‘중도로의 타협’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 민주당의 보고서는 50대 이상의 세대, 서민층과 자영업자, 수도권 및 충청권 유권자의 대거 이탈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고 진단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는 이들 유권자층에서 민주당이 모두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보다 높은 득표를 했는데 지난 대선에서는 반대로 민주당이 모두 뒤졌다는 것이다.

이런 민심의 이탈을 민주당은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 대선 약 한 달 전인 11월 25일 민주당 대선캠프의 전략기획팀이 여론조사를 통해 이들 유권자층의 성향을 분석한 비공개 보고서를 보면 실제 투표 결과와 거의 같았다. 민심이 아무리 변덕이 심하다지만 하루 이틀 만에 변하지는 않는다. 지난 대선이 민주당에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가 아니라 사실은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민심의 변화가 일어났을까. 대선보고서는 그 이유를 정당 요인, 후보 요인, 선거전략 요인별로 다각도로 분석했다. 그중에서도 정당 요인을 특히 중시했다. 보고서는 “민주당의 역사에서 발견하는 가장 뼈아픈 교훈은 오만과 방심”이라며 “민주당이 원래의 뿌리인 포용과 소통의 프레임을 벗어나 민생을 외면한 채 이념 논쟁, 계파 갈등, 대결 정치에 주력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대선보고서에 담지 못한 ‘소수의견서’라는 것을 별도로 냈다. 소수의견서는 대선 패배의 근원적 원인을 민주당의 낮은 지지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지지율이 낮으면 선거에서 홀로서기를 하기 어렵다. 끊임없이 곁눈질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분당 합당 연대통합에 연연하고, 당명을 새정치국민회의 이후 6번이나 바꾼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수의견서는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 혁신을 등한시한 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편법을 동원하는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지지율은 정당의 역량과 활동에 대한 국민의 평가다. 이념적으로 좌(左) 편향이 심하다, 작년 1월 이후 당 대표가 7번이나 바뀔 정도로 안정감이 떨어진다, 언행이 너무 거칠다, 정치적 책임윤리가 약하다, 정당과 사회운동의 차이를 혼동하고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로 지적되는 문제점들이다.

대선보고서와 소수의견서는 화장기 없는 민주당의 맨얼굴이다. 5·4 전당대회에서 어떤 새 지도부가 들어서든 그 맨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방도부터 고민해야 한다. 지지율이 낮은 정당이 집권을 꿈꾸는 것은 요행수를 바라는 심보와 다를 바 없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미국 공화당#민주당#대선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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