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7년간 그대로인 해외쇼핑 면세기준 400달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0일 03시 00분


관세청은 해외 면세점이나 의류 잡화 귀금속 판매점에서 일정액 이상을 쓴 내국인의 신용카드 명세를 넘겨받아 세관 검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관세법 개정안을 마련해 상반기에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국내 면세점의 신용카드 거래만 받아보던 것을 해외 카드 결제 명세까지 손바닥에 올려놓고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밀수로 인한 탈세, 불법 외환거래 등에 따른 지하경제 규모는 연간 47조 원으로 추정된다. 해외에서 수백만 원짜리 고가 핸드백이나 액세서리 등을 사오면서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것은 명백한 세금탈루 행위다. 백운찬 관세청장도 그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고가의 물건을 사고 입국할 때 세금을 안 내는 것은 밀수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현실과 동떨어진 면세 기준은 그대로 두고 단속 으름장만 놓는 것은 국민을 잠재적 밀수범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인당 면세 한도 400달러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2000달러 수준이던 1996년에 책정했다. 17년간 소득이 갑절 가까이로 늘었는데도 면세 한도는 그대로다. 이러니 선물 수요가 많은 신혼부부나 해외 출장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공항 입국장을 통과하는 게 현실이다. 가족과 함께 외국에 갔다가 청바지 몇 벌만 사도 400달러는 쉽게 넘어간다. 면세 한도가 높은 일본은 20만 엔(약 2000달러), 우리보다 소득이 낮은 중국도 5000위안(약 800달러)이다. 정부가 소득 증가와 물가 상승을 이유로 2005년 출국 내국인의 면세점 구매 한도만 3000달러로 50% 높인 것과도 형평이 맞지 않는다.

한국조세연구원은 2년 전 국민소득과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을 고려해 면세 한도를 600∼1000달러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현실적 면세 기준은 올리지 않고 신용카드 단속만 강화하면 현금 구매 유혹만 커질 것이다. 세수 효과도 크지 않고 세관 행정력만 낭비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2000년대 들어 면세 한도를 2배로 높이고 여행객보다 마약 총기 밀매 감시에 집중하고 있다. 지하 경제 양성화의 취지는 좋으나 여행객을 잠재적 탈세범으로 만드는 제도는 옳지 않다. 합리적인 면세 한도 조정과 단속 강화는 함께 가야 효과가 크다.
#면세점#관세청#400달러#해외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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