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창조경제는 □□□□다

  • Array
  • 입력 2013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 : 비아그라

천광암 경제부장
천광암 경제부장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1200번이 넘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백열전구를 발명했다. 1879년 말 백열전구를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보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1200번 실패한 것이 아니다. 전구가 켜지지 않는 방법을 1200가지나 알아낸 것이다.” 그가 축전지를 발명할 때는 2만5000번이나 실패를 했다.

인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상품치고 실패나 시행착오의 결과물이 아닌 경우는 드물다. 페니실린, 전자레인지, 껌 등은 실패가 없었으면 아예 세상에 등장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백열전구 이후 인류의 밤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발명품인 ‘비아그라’ 또한 실패한 심장약 개발프로젝트의 부산물이다.

창업의 세계도 비슷하다. 최근 들어 국내 벤처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손꼽을 수 있는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카카오의 전신은 2006년 설립된 아이위랩이라는 곳이다. 이 회사는 ‘부루’라는 서비스를 내놨지만 결과는 실패작이었다. 이어 2008년 내놓은 ‘위시아’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부루와 위시아는 비록 연이은 실패작이었지만, 카카오톡이 크게 성공하는 밑거름과 자양분이 됐다.

우리나라처럼 실패자에게 가혹하고, 패자부활전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카카오 같은 성공사례가 생겨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실패에 대해 유독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적인 비교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이 지난해 주요 20개국(G20)의 성공한 청년기업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자. ‘당신 사회에서는 사업 실패를 배우는 기회로 받아들이는가?’라는 것이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렇다”는 응답이 24%에 불과했다. 20개국 중 이탈리아와 더불어 꼴찌였다. 중국은 그 비율이 54%였고, 미국과 브라질도 50%를 웃돌았다.

한국인들이 사업실패를 배우는 기회로 생각할 여유가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낙오자’라는 낙인이 평생 물귀신처럼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사업실패가 곧 ‘경제적 사형선고’로 직결되는 사회에서 실패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에서는 심지어 남의 실패까지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일이 많다. 남이 빚을 못 갚으면 내가 대신 갚겠다는 금융계약, 즉 연대보증 이야기다. 한국에는 저축은행 할부금융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서만 무려 200만 명이 연대보증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 일본 등 몇몇 나라에도 연대보증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사람을 ‘빚 지옥’에 몰아넣고 평생 숨통을 조여 가는 정도는 아니다.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 연대보증제도 폐지방안을 추진 중인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금융당국은 원칙을 피해갈 수 있는 예외를 일절 허용해선 안 된다. 제2금융권보다 피해가 심각한 대부업계 등의 연대보증도 서둘러 뿌리 뽑아야 한다. 독버섯을 쓸어낼 때는 작은 홀씨 한 알도 남겨둬선 안 된다.

박근혜노믹스의 모토인 ‘창조경제’도 이와 무관치 않다. 창조는 원래 신의 영역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실패와 시행착오를 염두에 두지 않고 창조에 도전하는 것은 오만이다. 이런 까닭에 ‘창조경제’는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고, 일곱 번 굴러 넘어져도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문화에서만 꽃필 수 있다.

우리를 지나친 성공강박증으로 몰아넣는 제도와 관행들이 남아있는 한 창조경제의 여린 싹은 절대 딱딱한 껍질을 뚫지 못할 것이다. 연대보증제도는 그저 하나의 작은 예다. 이런 ‘손톱 밑 가시’를 뽑아내는 일이 바로 주무장관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는 창조경제의 실체가 아니겠는가.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창조경제#박근혜노믹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