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림일]개성공단 여공들의 애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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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일 탈북작가
림일 탈북작가
평양에는 90%가 여성 근로자들로 이뤄진 ‘모란봉 피복공장’, ‘보통강 신발공장’, ‘대동강 어린이옷공장’ 등 경공업상품제조 공장이 유난히 많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평양 여성 근로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새 공장이 생겼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이곳 입사를 위한 선별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김일성 김정일 혁명사상 학습 점수가 높아야 함은 물론이고 4촌 안에 남한 친인척, 행방불명자, 외국연고자 등이 없어야 한다.

이들이 받는 정치교육의 내용은 이렇다.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 대통령 김대중에게서 중소기업들의 애로를 전해들은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동족이 어려울 때 우리가 도와야지. 누가 돕겠습니까. 우리는 하나입니다’라고 하시며 남조선 기업인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베푸시었다. 공화국을 침략하려는 미제와 남조선군부의 온갖 전쟁책동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장군님의 광폭정치가 있기에 오늘 한반도의 평화가 있다.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서 남조선 인민들에게 보내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혁명전사의 긍지와 함께 높은 경각심을 갖고 일해야 한다.”

개성공단 여공들이 받는 월평균 임금은 160달러 정도인데 당국이 사회보장금 등의 명목으로 45%를 공제한다. 비공개적으로 공제하는 ‘노동당충성자금’은 사상을 검증받는 잣대이기에 누구도 말 못하고 낸다. 결국 여공들은 겨우 2달러 정도만 받는다. 북한에서 2달러는 암시장에서 일반 노동자 석 달 치 봉급과 맞먹는 거금이다.

공단 폐지로 실업자가 된 5만여 명의 여성근로자들은 모내기 등 각종 사회적 운동에 동원될 것이다. 공단에서 간식으로 받던 초코파이와 쌀밥에 다섯 가지 이상의 반찬이 나오는 노동당 고위 간부 수준의 식사를 하던 그들이 지금 ‘아! 그때가 좋았는데…’ 하는 생각을 과연 가질까?

천만의 소리다. 그런 한가한 시간이 없도록 강도 높은 혁명학습과 사상검증을 받아야 한다. 또 개성공단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혁명을 위하여 절대 비밀에 부치고 살아야 한다. 이에 어긋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반혁명분자가 된다.

개성공단은 남한에서는 화합의 상징과도 같았으나 북한에서는 단순 외화벌이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개성공단 여공 5만여 명의 일자리와 그 가족 20만 명의 생계를 걱정할 노동당도 아니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시기 300만의 아사자가 생겨도 눈썹 하나 까딱 않은 북한 정권이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 김정은이 부디 경거망동을 중단하고 이성을 찾기를 바란다.

림일 탈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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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근로자#개성공단#반혁명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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