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해커, 구원자 혹은 파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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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1990년대 ‘해커’가 우리나라에 처음 나타났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한 날이 있었다. 인터넷이 겨우 보급되던 시기에 ‘해커’라는 직종이 신기해 기사를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닌 게 아니라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국내에 들어온’ 해커를 잡기 위해 공항에 출국금지명령을 내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컴퓨터 바이러스도 컴퓨터에 사는 바이러스로 착각하고 ‘General Failure’라는 메시지를 ‘페일류어 장군’으로 읽던 무지한 시절이었다.

이제 많은 이들이 해커를 알고 있다.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을 ‘어둠의 경로’로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프로그램을 설계하면 프로그래머, 파괴하면 해커라는 점에서 프로그래머와 해커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해킹은 불법이지만 해커는 ‘미성숙한 컴퓨터 천재’의 느낌을 준다. 전산망을 다운시키는 등 큰 물의를 빚은 해커를 기업이 스카우트하는 일도 있다. 기존 질서를 우롱하고 파괴한다는 점에서 지탄의 대상이지만 기존 질서에 반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문학작품이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해커는 질서의 파괴자이면서 숨은 영웅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스웨덴 소설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여주인공 리스베트는 천재 해커다. 개인의 행복을 앗아간 정부에 맞서 그는 신문기자 남자주인공과 함께 뛰어난 해킹실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영화 ‘다이하드4’에서 주인공 존 매클레인의 상대는 미국의 시스템을 공격하는 전직 정부 컴퓨터 보안요원이다. 매클레인 옆에는 그를 돕는 천재 해커가 있다.

3월 20일 방송국과 금융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예상대로 북한 정찰총국 소행으로 밝혀졌다. 그 와중에 ‘어나니머스’가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해 가입자 명단을 공개했고 태양절인 15일에는 북한 웹사이트를 5개나 더 해킹했다. 어나니머스는 공개성명을 통해 김정은의 사임, 핵무기 생산 및 핵위협 중단, 북한 주민의 자유로운 인터넷 접근 허용을 요구하고 6월 25일 북한의 내부망인 ‘광명’을 해킹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1인 독재체제 대 익명의 해커집단’이란 구도는 못된 영주에 맞서는 로빈 후드를 연상시키기 충분해 보인다. 실제로 어나니머스는 자신들의 상징으로 독재체제에 맞선 의적 ‘브이 포 벤데타’ 가면을 사용한다.

어나니머스의 행적을 보면 이들의 행위에 박수를 치기가 꺼림칙하다. 이들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미 의회, 일본 전자업체 소니를 해킹했다. 유명한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에 페이팔 등 온라인결제업체가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자 이들 업체도 공격했다. 이들은 북한이나 중동 같은 독재체제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의 온갖 인터넷 규제도 거부한다. 어나니머스의 의미가 ‘익명’임을 떠올리면 이들의 지향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이들이 반대하는 것은 권위와 기존 질서요, 지지하는 것은 무제한의 정보 소통과 표현의 자유다. 이들에게 리더와 명령체계가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인터넷상에서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물망 조직에서 어떻게 리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북한의 사이버부대와 어나니머스가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컴퓨터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답을 예상할 수 있다. 북한 사이버부대 구성원은 우리나라라면 삼성전자나 네이버에서 일할 두뇌들이겠지만 명령에 따라 일한다. 해킹의 본질은 자발성과 무정형성이다. 인터넷상에서 정형화된 시스템이 무정형을 이길 수는 없다. 바로 이 점이 어나니머스의 행위가 흥미롭긴 하되 환호할 수만은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나니머스는 북한에 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했다. 2008년 촛불시위대도 선거로 선출된 정부를 부정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익명과 해킹은 매력적인 만큼이나 위험한 조합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해커#바이러스#사이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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