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노래자랑 꼭 하고 싶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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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노래자랑 이후 10년… 어버이날 ‘앵콜 빅쇼’ 여는 송해

송해 씨의 짙고 숱이 촘촘한 눈썹 끝은 생각에 잠길 때마다 감긴 눈 위로 브이(V)자를 그리며 올라갔다. “예전에 공연을 하다 보면 객석에 ‘파뿌리’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부모를 모시고 온) 젊은 사람도 많더군요. 효라는게 아직 살아있나 봐요.”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송해 씨의 짙고 숱이 촘촘한 눈썹 끝은 생각에 잠길 때마다 감긴 눈 위로 브이(V)자를 그리며 올라갔다. “예전에 공연을 하다 보면 객석에 ‘파뿌리’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부모를 모시고 온) 젊은 사람도 많더군요. 효라는게 아직 살아있나 봐요.”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내 꿈이야 물맴이가 아무리 돌고 돌아도 결국은 돌아간다는 고향(황해도 해주)에 가는 거죠. 개성공단에서라도 꼭 노래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송해(본명 송복희·86) 씨의 작은 눈에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두꺼운 안경테를 벗어든 그의 도톰한 손마디가 뭉툭한 콧대 쪽으로 고여 든 눈물을 두세 번 훔쳐냈다.

“2003년 평양 노래자랑 녹화 때였어요. 삼엄한 분위기여서 그쪽 출연자와 말 한마디도 사적으로 섞을 수 없었지. 고향이 거기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였는데…. 근데 갑자기 그쪽 높은 사람이 은근히 내 소매를 끄는 거야. ‘들었습네다…. 저와 동향이라고.’ 그에게 데려다 달란 얘기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어요.” 그는 “정권도 바뀌고 해서 북한에서 다시 전국노래자랑을 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는데 요새 맘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KBS ‘전국노래자랑’이 평양에서 노래자랑을 연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송 씨는 ‘전국노래자랑’ 진행 30년을 맞았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 그가 운영하는 ‘원로연예인상록회’의 조용한 사무실에 율무차 향기가 퍼졌다.

“술!”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놀라 건강 비결을 물었더니 이렇게 짧은 답을 냈다. “술에도 영양이 있거든. 작년에 한 6개월 아파서 못 먹었어. 적적해서 못 견디겠더라고.” 그는 지난해 30년 ‘노래자랑’ 역사상 처음으로 딱 한 번 아파서 방송 출연을 못했다. 하루에 얼마나 마시냐고 묻자 멀찍이 있던 사무실 관리자인 ‘조 실장’이 대신 “(소주) 3병!”이라고 질렀다.

그가 고집하는 술의 약효 덕인지 송 씨는 건강을 되찾은 것 같았다. 다음 달 8일 오후 2시와 5시 서울 여의도동 KBS홀에서 ‘어버이날맞이 앵콜 송해 빅쇼 나팔꽃인생 노래하는 송삿갓’ 공연(문의 1599-3411)도 연다. 2011년부터 열어온 기획 공연의 앙코르 성격이지만 ‘판’을 싹 바꿨다. 2011년 공연이 6·25전쟁 발발부터 1·4후퇴, 휴전, 경제개발을 장면과 노래로 엮어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어루만졌다면 올해 공연에서는 제주, 대전, 경북 경주, 전북 남원을 돌며 신명나는 ‘정중동 전국투어’를 무대 위에 올린다. 무대가 경주로 바뀌면 불국사를 배경으로 승려들이 나와서 춤추며 ‘신라의 달밤’을 부르고, 대전에 가면 ‘대전부르스’를 부르며 냄비우동 한 가락 떠먹고, 제주에 가면 해녀들이 무용으로 물질을 흉내 내면서 ‘삼다도 소식’을 부르는 식이다. 피날레 무대는 남원이다. 춘향전에 해학을 듬뿍 얹을 예정이다. 허참이 변 사또, 금잔디가 춘향, 엄용수가 방자, 변아영이 월매를 맡는다. “나? 내가 이몽룡이야. 재밌겠지?”

희극 얘기가 나오니 요즘 TV 방송의 대세인 예능과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소회가 이어졌다. “신동엽이 참 진행 깔끔하게 잘하고, 이수근이 다방면으로 잠재력이 많고, 유재석이다 강호동이다 다들 참 잘해요.” 그러나 그는 “요즘은 개그만 있고 희극이 없다”고 했다. “희극은 웃기는 거죠. 그러려면 슬픔을 알아야 해요. 정극과 비극도 할 줄 알아야지. 개그는 희극 안에 있는 한 덩어리에 불과해요.”

그는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예를 들어 다문화가정의 참여가 7, 8년 전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자기들 고향 동남아시아에서도 전국노래자랑을 해달라고 소망을 많이 해요. 점점 갈 데가 많아져요. 출출하지? 점심이나 한술 뜨러 가지.”

식사를 하다 문득 이름 얘기가 나왔다. “6·25 때 피란민 틈에 섞여 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서 망망한 서해를 바라봤어요.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내 인생은 그저 저렇게 떠돌게 될 것 같다는 먹먹한 생각이 떠올랐죠. ‘그래, 바다다. 해(海)다.’ 이건데…. 거, 참. 이름 하나, 참, 잘 지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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