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조엘 킴벡의 Holly/Ad>‘비비안 리’를 빛나게 해준 최고의 드레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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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7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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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리
비비안 리
1939년은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대단한 한해였다. 지금까지도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들이 대거 탄생한 해였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 폭풍의 언덕,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굿바이 미스터 칩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까지. 그 중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인 마가렛 미첼 원작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며 이듬해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기도 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1940년에 열린 제 12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비비안 리'는, 붉은 양귀비 꽃이 수놓아진 프랑스산 실크 소재의 하늘하늘 나풀거리는 드레스 위에 그녀의 연인,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선물로 받은 ‘반 클리프 앤 아르펠(Van Cleef & Arpel)’의 아쿠아마린 펜던트 목걸이를 착용하고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그날 그녀의 의상은 마치 그녀가 열연한 영화 속 캐릭터, ‘스칼렛 오하라’가 ‘클락 게이블’이 맡았던 ‘레트 버틀러’에게 돈을 빌리러 가는 장면에서 자신의 안 된 처지를 숨기기 위해 집에 있던 벨벳 커튼을 뜯어내 만들어 입었던 드레스 만큼이나 인상 깊었다.

양귀비 꽃으로 가득한 그 화려한 프린트의 드레스는 로스앤젤레스의 윌셔 블러바드에 위치한 고급 백화점 ‘블락스 윌셔(Bullock’s Wilshire)’에 부티크를 열고 있던 아이린(Irene)의 작품이었다.

당시 아이린은 비비안 리를 비롯해, 마를린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 캐롤 롬바드 등 할리우드의 최고의 여배우 거의 모두가 손님으로 드나들었을 정도로 인기있는 부티크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돌아온 아이린이 할리우드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여자 배우들이 할리우드의 영화사에 소속된, 이른바 영화 의상을 제작하는 ‘코스튬 디자이너’에게 시상식을 위한 드레스를 의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린의 등장으로 여배우들이 하나둘 영화사에 소속된 의상부서에서 제작된 드레스가 아닌 고급 부티크의 드레스를 입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비비안 리가 처음으로 부티크 아이린의 의상을 입게 된 것은 1939년 12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개봉에 맞춰 영화의 감독을 맡았던 데이비드 O. 셀즈닉이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영화에 출연한 모든 여배우들을 위해 부티크 아이린의 드레스를 선물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아이린(Irene)의 의상을 입은 비비안 리
아이린(Irene)의 의상을 입은 비비안 리


비비안 리는 아이린에서 맞춘 멋진 드레스를 입고 아틀랜타, 뉴욕 그리고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사회와 공식 파티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비안 리는 미국의 대도시를 순회하는 시사회와 파티 투어를 위해 제작된 의상이었던 산족제비 털로 트리밍된 검은 벨벳 가운에 황금색 튈(tulle:얇은 명주 베일)의 앙상블을 부티크에서 피팅하는 동안, 아이린의 1940년 봄 컬렉션 의상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컬렉션 중의 하나였던 양귀비 프린트 드레스가 최종적으로 그녀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드레스로 낙점 되었던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당시의 아카데미 시상식까지는 전무했던 기록이었던, 총13개 부분에서 후보자로 노미네이트 되었고, 비비안 리가 열연한 여우주연상 부분도 포함되었다.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직후부터 오랜 동안 그녀만을 위한 단 하나의 오스카 드레스를 찾고 있었고, 아이린의 그 양귀비 프린트 쉬폰 드레스를 보는 순간, 바로 이 드레스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비비안 리는 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녀에게 꽃이란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뛰놀던 인도의 켈커타의 가족 소유의 저택 뒤편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원에서 보낸 시간,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다.

비비안 리는 그녀의 양친이 그녀를 미국의 기숙사 학교에 보내기 전까지 켈커타에서 살았었는데, 그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한 정원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에 대한 기억은 그녀에게 깊은 안정을 선사하는 정신적 오아시스의 역할을 했다. 그렇게 디자이너 아이린과 배우 비비안 리는 양귀비 꽃이 수놓아진 드레스를 통해 서로 궁극의 교감을 나누게 된 것이다.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 날이 열리던 밤, 비비안 리는 눈을 떼기 힘든 아름다운 붉은 양귀비가 수놓아진 드레스에 그녀가 최고로 좋아하는 장미향과 쟈스민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디자이너 장 파투(Jean Patou)의 향수를 살짝 뿌린 후 아쿠아마린 펜던트로 가운의 앞 부분을 여몄다. 그 펜던트는 바로 그의 연인인 로렌스 올리비에가 선물한 펜던트였다. 영화 촬영 동안 고생한 연인에게 바치는 애정의 표시로, 뉴욕의 5번가에 위치한 ‘반 크리프 앤 아르펠’에서 구입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비비안 리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펜던트는 마치 스칼렛 오하라로 살아야 했던 장장 7개월의 힘든 촬영을 마치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리에게 주어진 메달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비안 리가 리무진에서 내리자 수 많은 기자들이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고, 시상식장의 안내자는 베일에 가려진 아이린의 드레스를 입은 비비안 리와 영화의 감독인 데이비드 셀즈닉을 시상식이 열리는 앰배서더 호텔 로비로 인도했다.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그 순간을 ‘거의 폭동의 무리 같은 팬들이 그들을 덮쳤다’ 라고 표현했고 또 다른 영화 전문지 '헐리우드 리포터'는 ‘참석한 내빈 및 배우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아카데미의 스타는 바로 비비안 리’라고 기술했다. 그 날 밤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비비안 리와 그녀의 드레스였다.

비비안 리가 오스카 트로피를 그녀의 집 거실의 벽난로 위의 선반에 놓고 있다.
비비안 리가 오스카 트로피를 그녀의 집 거실의 벽난로 위의 선반에 놓고 있다.


새벽 1시15분, 이번에는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가 여우주연상 발표를 위해 연단에 올라섰다. “제게 이 수상자를 발표하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우 주연상 수상자는…바로 미스 비비안” 이라고 발표하자, 순간 귀가 먹을 정도의 큰 박수 갈채가 쏟아졌고, 시상자의 다음 코멘트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학수고대하던 순간 비비안 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우아한 걸음으로 수상을 위해 연단으로 올라갔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내가 만약 영화를 찍는 동안 제게 엄청난 호의를 베풀어준 모든 사람들을 말해야 한다면, 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상영시간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라고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비비안 리는 시상식이 끝나고 행사장을 떠날 때의 상황을 “단지 불길만 없었을 뿐이었어요”라고 그때의 팬들의 열화같은 환호를 영화의 한장면인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 오하라가 마차를 타고 불길을 빠져 나오는 장면에 비유했다.

하지만 리무진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차 안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왜냐하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녀의 연인 로렌스 올리비에가 수상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라이프’지는 비비안 리가 수상 후 집에 도착하는 장면을 사전에 촬영하기로 약속을 해 두었었는데, 그렇게 그녀가 자신의 오스카 트로피를 그녀의 집 거실의 벽난로 위의 선반에 놓는 순간을 포착한 유명한 사진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비비안 리는 아이린이 디자인 한 드레스를 즐겨 입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와 파티에 참여하는 등, 비비안 리와 디자이너 아이린의 공생관계는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조엘 킴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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