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수…무지는 계몽해야” 욕하는 게 계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 SNS ‘손가락 욕설’ 논란

팝아티스트 이주혜 씨가 14일 오전 3시 5분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나란히 있는 사진 간판 옆에 선 이 씨가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 세운 모습이다. 이주혜 씨 페이스북 캡처
팝아티스트 이주혜 씨가 14일 오전 3시 5분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나란히 있는 사진 간판 옆에 선 이 씨가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 세운 모습이다. 이주혜 씨 페이스북 캡처
#1. 여성 팝아티스트(대중예술가) 이주혜 씨(25)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사진 앞에서 ‘손가락 욕’을 하는 사진을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씨는 13일 경북 구미시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 진행된 ‘박정희와 팝아트 투어’에 참가해 박 전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간판 앞에서 이런 포즈를 취했다. 이 씨는 ‘우리는 순수하다. 그러나 무지는 계몽해야 하고 죄이자, 폭력이다’라는 글을 함께 올렸다.

#2. 자칭 ‘새누리당 저격수’ 황모 씨(28)는 지난해 4·11총선과 대선 기간에 트위터로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선후보를 비난했다. 황 씨는 총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4월 4일 “맘 같아선 박근혜 ××를 찢어버리고 싶다. 삼성동 저택에 근혜 있을 때 수류탄 던지고 싶다”는 트윗을, 총선이 막 끝난 지난해 4월 15일엔 “만약 내 부모가 박근혜나 이명박이었으면 난 벌써 죽였다”라는 트윗을 날렸다. 황 씨는 박 대통령의 남편감으로 조두순, 오원춘 등 성폭행범이 제격이라는 트윗도 다수 퍼뜨렸다. 인터넷 게시판엔 ‘박근혜와 오원춘이 같이 교도소에 합방되는 그날까지’라는 글을 올렸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전현직 대통령에게 퍼붓는 욕설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국가원수에 대한 비판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권리지만 일부 인사들은 보는 이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준의 욕설을 서슴지 않는다.

팝아티스트 이 씨가 육 여사에게 손가락 욕을 하는 사진은 14, 15일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정치적 견해에 따라 찬반 견해를 표현할 수 있지만 왜 육 여사에게까지 욕설을 퍼붓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 씨를 향해 “저 ×, 육 여사가 누구인지 알고나 저러나”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 씨는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했다가 15일 다시 열었다. 이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욕을 잘 모르나본데 내 손가락 방향을 보면 육영수 여사가 아니라 그 사진을 보는 ‘박정희 빠(열혈지지자)’에게 욕을 하는 것”이라며 “박정희는 이미 죽었지만 사실 죽지 않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이 씨의 트위터엔 ‘1980.5.18 대량살인을 정당화한 유신정권. 당연한 권익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살해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유신정권은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종말을 고했으며 5·18민주화운동 진압과는 무관하다. 이 씨가 역사의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방 중독증’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국가원수 비난 글을 올리는 데 매달리는 누리꾼들도 있다. ‘새누리당 저격수’를 자칭했던 대학 휴학생 황 씨는 ‘안티 박근혜’라는 트위터를 운영하며 4300여 명의 팔로어에게 2400여 개의 ‘욕설 트윗’을 쓰거나 리트윗하고 있다. 황 씨는 지난해에는 다른 트위터 계정으로 이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 등 여당 인사를 비방하는 트윗 4000여 개를 쓰거나 리트윗했다. 결국 황 씨는 도가 지나친 후보 비방으로 지난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두 차례 불구속 기소됐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경찰과 동행해 황 씨의 아버지를 찾아가 ‘아들이 온라인 활동을 자제하게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박 대통령을 살해하고 싶다는 황 씨의 위협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황 씨는 15일 자신이 운영하는 박 대통령 안티 카페에 글을 남겨 “국정원의 이번 행위는 민간인 사찰이며 헌정질서 파괴”라고 주장했다.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국정원이 황 씨 가족을 방문한 건 민간인 사찰”이란 논평을 냈다.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성향 대통령만 욕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맹목적인 비난을 퍼붓는 글도 숱하게 검색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객관적 사실을 알아보기보단 이념적 지역적으로 자기편이 아니라고 여겨질 경우 무조건적인 증오를 퍼붓고 보는 치기 어린 역사관이 사회에 만연한 결과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가원수모독죄는 1988년 폐지됐다. 하지만 국가원수뿐만 아니라 그 누구를 대상으로 해서라도 상습적으로 인신공격성 비방을 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엔 모욕죄와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

조동주·이철호·권오혁 기자 djc@donga.com

[채널A 영상]전두환에 수갑 채우고…‘정치인 풍자 포스터’ 예술이냐 불법이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