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靑-정부, 대북 메시지부터 통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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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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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정치부 기자
이정은 정치부 기자
정부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와 이에 대한 북한 반응의 해석을 놓고 잇달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관련 실무 부처 당국자들은 크게 위축돼 있는 분위기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1일 오후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화 제의는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가 저녁 늦게 “대화 제의가 맞다”고 확인하자 난처한 처지가 됐다. 기자회견 직전 청와대에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과 내용을 상의까지 했는데 그 진의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 아니냐는 언론의 지적까지 받았다. 사흘 뒤에도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됐다. 통일부는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를 ‘교활한 술책’이라고 비난한 북한의 반응에 대해 “대화 거부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거부’로 평가하고 강한 유감을 표시하자 해명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외교부도 동병상련이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 전날 전격 발표된 박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대해 “대북정책의 기존 방침을 원칙적으로 천명한 것일 뿐”이라고 미국 측에 설명했다. 밤늦게까지 국제전화를 붙들고 열심히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식 대북 대화 제의’라는 청와대의 진의가 뒤늦게 확인되자 설명의 포인트를 급하게 바꿔야 했다. 외교부는 “포괄적인 남북 대화가 아니라 개성공단 문제에 한정해 북한 측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것”이라고 입을 다시 맞췄다. 외교부는 사전에 박 대통령의 대화 제의 사실을 몰랐던 탓에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민감한 시기에 한반도 기류를 바꿀 수 있는 대북 대화 제의의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된 것이 섭섭한 눈치다. 청와대가 “개성공단 등 대북 문제에 대해 통일부로 언론 창구를 일원화하겠다”고 밝혀 오다가 북한의 대화 제의 거부에 대해서는 주철기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직접 나선 것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들은 의아해한다.

대북정책을 직접 다루는 외교안보 부처 당국자들조차 요즘 기자의 관련 질문에 “청와대에 물어보라”거나 “잘 모르겠다”는 식의 회피성 답변만 내놓는다. 한 고위당국자는 “청와대에서 보기엔 내가 미관말직일 뿐”이라는 자기 비하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 간 업무 중복과 묘한 경쟁의식이 충분한 의견 조율을 통한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데 지장을 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한 전직 고위당국자는 “류 장관이 ‘제가 발표할 내용이 북한에 대한 공식 대화 제의 맞습니까’라고 박 대통령에게 되물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이런 혼란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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