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규 “개성공단 기업인에게 엎드려 사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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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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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 산파역 김윤규 아천글로벌 회장 인터뷰

11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윤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 회장은 남북 경협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이 최근 가동 중단의 위기에 처한 것에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사진은 2008년 독자적인 대북사업을 추진하던 시기의 김 회장. 동아일보DB
11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윤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 회장은 남북 경협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이 최근 가동 중단의 위기에 처한 것에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사진은 2008년 독자적인 대북사업을 추진하던 시기의 김 회장. 동아일보DB
“10년 전에 중소기업인들을 모아놓고 ‘한 번만 개성에 들어와 달라’ ‘내가 당신들 돈 벌게 해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꼴을 맞았으니….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엎드려 사죄라도 하고 싶습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의 ‘산파’ 역할을 했던 김윤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 회장(69)은 “현대와 나를 믿고 전 재산을 투자한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김 회장은 특히 민간기업이 추진한 남북경협 사업이 정치적 협상카드로 전락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단언컨대 민간이 주도한 민간사업”이라며 “왜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동안 수많은 남북 문제가 있었음에도 양측 모두 개성공단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며 “이번에 가동 중단이라는 극단의 조치가 나왔지만 폐쇄만큼은 정말 온 몸으로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89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한을 향했을 때부터 줄곧 남북 경협사업의 현장을 지켜왔다. 현대건설과 현대아산 대표이사를 거치며 금강산관광, 개성관광, 개성공단 조성 등 모든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한 것도 그였다.

김 회장은 “개성공단이 일시적으로라도 폐쇄된다면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완전히 새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며 “한 달이든 6개월이든 얼마나 빨리 재가동을 하느냐에 따라 사업 전체의 명운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시적으로라도 공단이 폐쇄될 경우 ‘다시 닫힐 수 있다’는 리스크가 투자 유치나 해외 공급계약 등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는 개성공단이 10년 가까이 시범운영 수준에 머물러 온 것을 최근 가동 중단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현대아산은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개성공단 사업에 합의했을 때 6600만 m²(약 2000만 평)를 개발키로 했다. 그는 “계획대로라면 2200개 기업이 입주해 북한주민 66만 명을 고용하고, 매출액도 연간 240억 달러에 이르렀을 것”이라며 “이런 규모면 북한에서 절대 가동 중단이니 폐쇄니 하는 단어를 쉽게 꺼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개성공단은 330만 m³(약 100만 평) 터에 123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북한 고용인원은 5만3000명 수준이다.

김 회장은 가방 속 서류뭉치 중에서 ‘토지리용증’이라고 적힌 A3 용지 크기의 문서 두 장을 꺼내보였다. 북한 당국이 금강산 인근 관광지 개발에 필요한 강원 고성군 일대(문서번호 91)와 개성공단 개발 용지인 황해 개성시 일대(문서번호 92)의 땅을 현대아산 측에 빌려준다는 문서 사본이었다. 계약일은 각각 2002년 11월과 12월, 임대기간은 그로부터 50년이라고 적시돼 있었다.

“정말 한스럽지 않습니까? 이렇게 문서화가 돼 있는데 금강산도 모자라 개성공단까지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거라도 가져가서 한 번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 회장은 2005년 현대그룹을 떠난 뒤에도 개인 사업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대북사업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는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며 “이젠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하기 힘들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남북경협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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