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2부]반칙운전 차에 가장 잃은 가족 ‘눈물의 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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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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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아빠’라는 단어 뜻도 모르고 자라 아무 잘못없는데 왜 이런 고통 겪어야하나”

어린 아들에게 늘 ‘차 조심’을 당부할 정도로 안전운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고(故) 김모 씨(오른쪽). 단란했던 가정은 반칙운전자의 과속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진은 사고 발생 6개월 전 김 씨 가족이 휴가 떠났을 때의 모습. 김 씨 유족 제공
어린 아들에게 늘 ‘차 조심’을 당부할 정도로 안전운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고(故) 김모 씨(오른쪽). 단란했던 가정은 반칙운전자의 과속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진은 사고 발생 6개월 전 김 씨 가족이 휴가 떠났을 때의 모습. 김 씨 유족 제공
과속으로 인한 사고의 치사율은 35%다. 일반 교통사고의 10배 가까운 수치다. 운전자 법규 위반 항목 중 ‘달리는 기차와 부딪혔을 때’ 다음으로 높다. 한 번에 3명 이상 사망하거나 2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형 교통사고’ 4건 중 1건도 과속 때문이다. 과속은 반칙운전 당사자의 목숨뿐 아니라 무고한 다른 시민들의 삶까지 파괴하는 중대 범죄라는 뜻이다.

1996년 1월 2일 오전 4시경 영동고속도로 신갈 분기점 부근에서 사고를 당한 김모 씨(당시 38세)도 과속 사고의 피해자다. ‘무사고 무딱지’를 자랑하는 모범운전자였던 김 씨는 사고 당일에도 안전거리 유지는 물론이고 제한속도(1996년 당시 시속 80km)를 지키며 운전 중이었다. 하지만 뒤를 따르던 오모 씨(48)의 차량은 제한속도를 50km나 넘긴 시속 130km로 질주했다.

오 씨는 앞선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자 급히 차로 변경을 시도하다 옆 차로를 달리던 김 씨의 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두 차량은 불이 붙은 채 함께 굴렀고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오 씨는 현장에서 도망쳤다가 6시간 후 자수했다.

반칙운전자의 과속은 안전운전에 철저했던 김 씨가 손 쓸 새도 없이 그의 목숨을 앗아갔고 가정을 파괴했다. 김 씨는 두 살 아들과 생후 2개월 딸과 함께 누구보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김 씨는 직장 동료들과 강원도에 갔다가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혼자 이른 새벽에 출발했다 참변을 당했다. 부부는 신도시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입주를 한 달 앞두고 있었다. 김 씨의 아내 박모 씨(52)는 12일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가 지어지는 것을 보러 다녔다.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행복한 나날이었다”고 회고했다.

남편을 잃은 뒤 박 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힘들게 마련한 아파트는 생활비 때문에 팔았다. 매일 저녁이면 아빠를 찾는 아이들을 달래야 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박 씨는 온종일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옆집 아이가 ‘아빠’ 하면서 자기 아빠에게 달려가자 네 살이던 제 딸이 덩달아 ‘아빠’라고 소리치며 쫓아가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보니 아빠라는 말의 뜻을 몰랐던 거예요. 옆집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른다고 생각했나 봐요. 가슴이 무너졌죠.”

남편의 부재는 익숙해지기 힘든 일이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박 씨의 가족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사고피해가족지원비로 생계를 이어가며 여전히 힘든 삶을 견디고 있다. ‘교통사고’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 가정의 불문율이다. 박 씨는 “남편이나 우리 가족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반칙운전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반칙운전#과속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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