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91>나의 연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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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봉
―김요아킴(1969∼)

세상의 모든 가치는 몸이다
월요일 새벽 출근을 서두르는
신문 가판대로 비싼 몸을 보았다
FA 시장에 나온 거물급의 한 타자
프로가 뭔지를 보여 주는 값을
1면으로 채웠다
땀으로 퇴적된 실력은 범접조차 힘든
연봉으로 관중들을 불러 모으고
아쉽게 어제 경기를 비긴 나는
얼핏 내 몸값을 더듬어 보았다
한국인 평균보다 모자라는 키에
약간 넘쳐나는 몸무게
어린 시절 동네 야구에서 틔운 싹을
석삼년 사회인 팀에서 꽃 피우는
나의 연봉은 마이너스
유니폼을 맞추고 글러브를 사고
꼬박꼬박 회비를 부으며
경기의 승패에 상관없이 기울이는 술잔의 수
덤으로 일요일을 차압당한
마누라의 잔소리와 딸들의 원성
나의 통장에 찍히는 몸값은 확실한 마이너스
여전히 세상의 가치는 몸이 지배하지만
센터를 가르는 시원한 안타와
역동적으로 아슬하게 아웃시킬 송구를 꿈꾸며
다음 경기가 또 설레어지는 나에겐
사실 연봉이란 말은 사치일 뿐이다

요리사에게 인생은 요리다. 등산가에게 인생은 등산이고, 건축가에게 인생은 건축. 인생은 포커라고 부르짖는 도박사도 있을 테다. 우리는 저마다 제가 몸 바쳐 사랑하는 것에 인생을 비춰본다. ‘야구를 통하여 인간의 한계와 비애, 희망과 기쁨을 노래한’ 시집 ‘왼손잡이 투수’에 의하면 인생은 야구다. 삶의 면모들을 야구에 빗대 보여주는 이 야구시집은 꽤 재밌다. 나는 야구에 아무 관심이 없어서, 텔레비전 앞에 아버지랑 남동생이 앉아 야구 경기를 볼 때면 내내 방을 들락거리면서 ‘왜 이렇게 오래 하느냐!’며 절망적일 정도로 지루해했던 기억밖에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사회인 야구팀 선수가 신문 1면에 실린 거물급 프로야구 선수 기사를 보고 그와 저의 몸값을 재보는 모습을 그린 ‘나의 연봉’도 얼마나 웃음을 자아내는가? 시인 김요아킴은 사회인 야구팀 선수이면서 야구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오타쿠’가 됐든, 아마추어가 됐든 이렇게 사랑하는 게 하나쯤 있으면 사회생활의 웬만한 아픔이나 고달픔은 의연히 이겨낼 수 있을 테다.

“시인이 시 쓰기를 그만두면 무엇이 될까? 스포츠맨이 되리라.”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다. 예술과 스포츠는 닮았다. 순수한 집중으로 희열을 느끼면서 초라한 삶을 낭만적으로 고양시킨다. 승부와 연봉에 매일 수밖에 없는 프로 선수보다는 아마추어 선수가 진정한 스포츠에 더 가까울 테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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