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진보예술가들 ‘박정희를 관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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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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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아티스트들, 생가-기념관 투어

13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자신의 고양이 인형을 박 전 대통령 사진 패널의 어깨에 얹고 볼을 갖다 대는 묘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팝아트협동조합 제공
13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자신의 고양이 인형을 박 전 대통령 사진 패널의 어깨에 얹고 볼을 갖다 대는 묘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팝아트협동조합 제공
“앙!”

13일 오후 경북 구미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팝아티스트 낸시랭은 자신의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을 실물 크기의 박 전 대통령 사진 패널 위에 얹었다. 그가 특유의 섹시 포즈를 과장되게 취하며 사진촬영을 하자 주변의 중장년층 관람객들은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대통령 어깨를 저리 만지믄 우야노. 감히….”

50, 60대 관람객이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피어싱과 진한 화장,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한 스무 명 남짓의 젊은 관람객 무리는 물에 뜬 기름처럼 눈에 확 띄었다.

“우리는 박정희를 관광한다.”

낸시랭과 강영민 씨(팝아티스트) 등이 포함된 팝아티스트 모임인 팝아트협동조합과 대구예술발전소가 주최한 ‘박정희와 팝아트 투어’ 참가자들이 내건 구호다. 이 투어는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박 전 대통령을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박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사를 미학적으로 돌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 행사의 공동기획자인 디자인평론가 최범 씨는 “1967년 박 전 대통령이 ‘미술수출’이라는 휘호를 썼다. 즉 수출을 위한 미술, 디자인이 그때 생겼다”며 “지금까지 한국에서 디자인은 삶의 도구가 아닌 국부를 늘리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박정희 시대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참가자 중에는 진보적 성향의 젊은 예술가가 많았다. 강릉에서 참가한 이민선 씨(미술인)는 “내 또래들 사이에서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지만, 부모님 세대는 긍정적 향수를 갖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밝혔다.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찾은 이른바 ‘박정희 투어’ 참가자들. 이들은 청와대 경호실 출신으로 박 전 
대통령을 18년간 수행한 이상열 씨(뒷줄 인형 가면 오른쪽)와 티타임을 갖기도 했다. 팝아트협동조합 제공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찾은 이른바 ‘박정희 투어’ 참가자들. 이들은 청와대 경호실 출신으로 박 전 대통령을 18년간 수행한 이상열 씨(뒷줄 인형 가면 오른쪽)와 티타임을 갖기도 했다. 팝아트협동조합 제공
이 투어는 이날 하루 동안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기념·도서관과 구미시의 박 전 대통령 생가, 대구예술발전소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기념·도서관 방문에선 1960, 70년대 산업 발전과 시대상을 살펴본 뒤 청와대 경호실 출신으로 박 전 대통령을 18년간 수행했던 이상열 씨와 티타임도 가졌다.

특히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구상해 그린 드로잉 작품이었다. 홍삼 씨는 “아마추어를 넘어선 뛰어난 수준”이라며 “기존에는 친일파, 군인, 독재자라고 생각했지만, 전시물을 보며 교양과 재능이 뛰어난 인간 박정희를 발견했다”고 했다.

이들의 관광은 ‘박정희 견학’이면서 동시에 ‘팝아트 퍼포먼스’였다. 강영민 씨는 방문지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조는 하트’ 가면을 쓰고, 태극기와 인공기를 패러디한 깃발을 흔들며 일반인의 시선을 모았다.

일부 참가자는 기념관에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소개한 기록 영상을 관람한 뒤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한 참가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고 보기 괴로웠다”고 했다. 그러나 참가자 대부분은 이 투어를 통한 경험 자체에 대해서는 의미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박정희 향수’ ‘박정희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재민이 씨(미술인)는 “여전히 불편하고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무작정 비판하기보다는 먼저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첫걸음을 뗀 것 같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팝아트협동조합은 앞으로도 현대사를 주제로 한 팝아트 투어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구미=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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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티스트#박정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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