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6>허정무가 본 홍명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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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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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새 역사 쓸 ‘준비된 리베로’

2009년 청소년대표팀을 맡아 청소년 월드컵을 준비하던 홍명보 감독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감독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DB
2009년 청소년대표팀을 맡아 청소년 월드컵을 준비하던 홍명보 감독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감독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DB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준비하던 1989년 가을 어느 날 서울 효창운동장을 찾았다. 당시 축구대표팀 트레이너로 고려대 재학생인 홍명보를 보기 위해서였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 등이 겹쳐 수비라인이 약했다. 유망한 선수를 수소문하던 중 홍명보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직접 보러 간 것이다. 세간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미드필더와 수비를 번갈아 보는 홍명보는 볼 센스가 뛰어났고 영리한 플레이를 했다. 단 한 경기로 평가할 수 없어 바로 KBS 방송국을 찾아가 그동안 홍명보가 출전한 고려대 경기를 비디오로 모두 지켜봤다. 그리고 발탁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한 홍명보 한국 올림픽대표팀 감독(44)과 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회택 이탈리아 월드컵 감독은 스리백을 썼다. 스위퍼는 홍명보에게 딱 맞는 포지션이었다. 처음엔 약간 미숙했지만 199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전지훈련을 거치면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이탈리아 본선 전 경기를 출전하며 한국의 대표 수비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홍명보는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데다 리더십까지 갖췄다. 선수들을 하나로 모으는 융화력도 뛰어났다. 이탈리아 월드컵이 끝나고 프로축구 포항 코치로 있을 때 홍명보를 영입했다. 고려대를 졸업한 홍명보는 잠시 병역을 해결한 뒤 1992년 포항에 둥지를 틀었다. 대선배들이 즐비했지만 홍명보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홍명보는 선배들과 후배들의 가교 역할을 잘했다. 포항은 그해 프로축구 정상에 올랐다. 홍명보의 이름이 알려지자 일본 프로축구 쪽에서 ‘러브 콜’이 쏟아졌다. 하지만 포항은 아직 홍명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포항제철소 소장이었던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에게 “제발 좀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구택 회장은 홍명보에게 당시 프로 최초의 ‘연봉 1억 원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아줬다.

사실 홍명보를 너무 믿어서 혼난 적도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을 때 홍명보를 와일드카드로 뽑았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했다. 주치의가 큰 부상은 아니라고 했고 홍명보도 괜찮다고 해 계속 끌고 갔는데 대회 1주일 전에야 “감독님 안 되겠습니다”고 해 갑자기 강철로 대체해야 했다. 당시 수비라인이 홍명보를 주축으로 꾸며졌었다. 결국 스페인과의 첫 경기(0-3 패)를 완전히 망쳐 2승 1패를 하고도 아깝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홍명보에게 “내게 시드니 때 빚을 갚으려면 꼭 메달 따야 한다”고 웃으면서 얘기했더니 “그 악몽 저도 잊지 못합니다”라고 답하고 동메달로 보답했다.

홍명보는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이끌 모든 자질을 갖췄다. 아주 영리해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란 명장 밑에서 선수로 뛰며 ‘4강 신화’를 창출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땐 ‘작은 장군’ 딕 아드보카트를 코치로 보좌했다. 최고의 전략가인 핌 베어벡 감독과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인연을 이어 가며 많은 것을 배웠다. 홍명보는 세계적인 명장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잘 분석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홍명보는 2009년 이집트 20세 이하 월드컵(8강),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3위) 등 대표팀을 이끌며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때론 강력하면서도 때론 형님 같은 카리스마를 앞세우고, 철저하게 실력과 컨디션, 그리고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전략 전술로 선수들과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과 김보경(카디프시티) 등 일명 ‘홍명보의 아이들’을 주축으로 한국축구 역사의 큰 획을 그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홍명보가 모교 고려대를 방문해 “준비하지 않으면 어떤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고 강연한 적이 있다. 홍명보는 철저하게 ‘준비된 리베로’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기회에 우쭐하지 않고 더욱 매진했다. 런던 올림픽 ‘금의환향’을 잊고 지금도 스승 히딩크 감독(러시아 안지) 밑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 축구에는 이렇게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큰 자산이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끝―
#허정무#홍명보#축구#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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