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통해 이병진이라는 ‘사람’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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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1일 09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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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4월 4일부터 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던 ‘제 22회 서울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PHOTO & IMAGING 2013, 이하 P&I 2013)’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삼성, 니콘, 캐논 등 주요 DSLR 카메라 제조사를 비롯해 세기 P&C, 한국후지필름 등 사진 영상 관련 21개국, 197개 업체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P&I 2013은 기존 사진 영상 관련 행사가 많이 달랐다. 기존 행사가 제품과 기술 발표, 모델과 이벤트 위주로 진행했다면, 이번 P&I는 ‘사진’ 그 자체에 좀더 접근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사진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찍는다고 했다. 캐논 5D Mark3, 니콘 D4라는 고성능, 고가의 DSLR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아니, 사진을 찍는 당사자도 스스로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DSLR 카메라라는 IT 제품은 이성에 가깝지만, 그 DSLR 카메라로 찍는 사진은 감성에 가까워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지난 P&I 2013에 참가한 니콘은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방문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오전 11시부터 5시 30분까지 다양한 사진작가를 초청해 그들의 노하우를 전달했다.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국방부와 육군의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상훈 사진작가부터 2011년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조직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연예인 이광기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강단에 섰고, P&I 2013 기간 동안 많은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에 IT동아는 2005년 사진 클럽 ‘찰나의 외면’을 창단하고 2012년 ‘이병진의 헌책’ 등을 출간한 개그맨 겸 방송인 이병진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은 그 자체를 즐기는 것

머리가 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부터 들려오는 말에 ‘맞아, 맞아’를 반복하는 아줌마까지. 남녀노소 불문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같은 화면을 보며 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P&I 2013이 열렸던 코엑스의 니콘 부스 모습.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고 있는 이는 이병진씨다.


그의 강연 주제는 ‘Nikon, 그리고 사람’. 그의 설명은 사진 촬영 기법이나 DSLR 카메라를 다루는 기법, 렌즈를 고르는 법 등 기존 사진 강연에서 알려주는 내용과 달랐다. 딱딱한 설명이 아닌 특유의 느릿한 말투와 함께 잔잔한 유머를 섞은 그의 말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모였다.

그가 설명하고 있는 사진은 직접 여행을 다니며 찍은 우리네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이다. 부산의 해운대 시장, 그 시장에서 트럼펫을 불며 신발을 팔던 아저씨, 처음 시장에 나와 나물을 팔던 우리네 아줌마, 아직도 옛날 방식으로 무쇠를 두들기던 인간문화재 대장장이, 시골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만난 늦은 겨울 논일을 하고 있는 할머니들, 낯선 시골의 우편 배달부 등.

그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즐겁다. 사람을 만나는데 하나의 접점, 매개체 역할을 한다. 방송인,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외출 자체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병진이라는 사람은 쉽게 사람에게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메고 있으면 다르다. 지나온 길의 풍경,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 순간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사진이라는 추억을 선사한다”라며, “여기 앉아 계신 분들도 직접 밖으로 나가길 권한다.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진을 찍었으면 한다. 어려운 기법으로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일까. 우리네 사람들, 주변 풍경들, 낯선 곳의 만남을 담아낸 사진이 더 정감 있다”라고 말했다.

카메라, 사진이 곧 사람이다

강연을 마치고 그와 함께 인터뷰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한 여성 관람객이 다가왔다. 그녀는 이병진이 올해 출간한 ‘내게 가장 쉬운 일은 당신을 사랑하는 일’ 책에 사인을 요청했고,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춰 책에 직접 사인을 해줬다. 그의 말마따나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과의 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현재 DSLR 카메라 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이번 강연뿐만 아니라 니콘의 포토스쿨에도 나서 사진에 대해 강연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사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이병진: 아버지께서 사진을 좋아하셨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금 기억나는 건 처음 DSLR 카메라가 나왔을 때다. 충격이었다. 필름이 없어도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사진을 찍자 마자 바로 확인할 수 있다니.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대학교 때 연출을 공부하면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니콘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필름 살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 때 이후로 DSLR 카메라로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입문? (웃음) 그렇게 지금까지 사진 활동을 했다. DSLR 카메라가 출시한 이후 사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또 하나의 계기는 지금의 아내다. 아내를 만나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찍어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미니홈피 열풍. 국내 DSLR 카메라 시장이 커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미니홈피 열풍이 아닐까. 이어서 사진 동호회를 만들게 되고, 유명한 곳에 출사를 나가고, 사진 전시회/박람회 등에 다니고…. 그렇게 보통 사람처럼 사진을 접했고, 좋아하게 됐다. 보통 사람 아닌가. (웃음)


IT동아: 사진에 대해 관심을 넘머 열정을 가지게 된 계기는 없는가.

이병진: 생각처럼 안되더라. 사진이. 쉽게 얘기해 지금의 아내가 미니홈피에 내가 찍어 준 사진이 아닌 남이 찍어준 사진을 메인으로 걸어 놨을 때의 굴욕감. (웃음) 이런 것들이 승부근성을 자극했다. 아무리 봐도 그 사진은 원본이 아닌 보정 작업을 거친 사진인데. 나는 보정 사진이 아닌 원본 그대로의 사진을 좋아한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경쟁? 경쟁이라고 말하긴 우습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더 공부하고… 그랬던 것 같다.

IT동아: 그럼 지금도 보정 작업을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설마 지금 사용하고 있는 DSLR 카메라를 수동모드(M)로만 찍는가.

이병진: 액정도 끄고 찍는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고, 아마 끝까지 갈 것이라 생각한다. 필름 카메라를 지금도 중고 장터 등을 통해 찾고 조사한다. 물론, 작업을 위해 니콘 D4 같은 고성능 DSLR 카메라도 사용한다. 그런데… 뭐랄까. 지금도 평소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IT동아: 의아하다. DSLR 카메라 시대지만, 아직까지 아날로그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병진: 안 쓰면 가장 불편한 기능이 아닐까. 최고의 DSLR 카메라를 아날로그처럼 사용하면 안될까? 오히려 사진에 강한 애착이 생긴다. 사진 한 장도 정성 들여 촬영하게 된다. 내 스스로의 사진 연습 방법이라고 할까. DSLR 카메라가 있지만, 공부를 하려면 가장 편한 기능을 빼보자. 그렇게 했다. DSLR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일부러 LCD를 끄고 촬영했다. 간혹 LCD를 끄는 기능이 없는 DSLR 카메라는 그 위치에 절연테이프를 붙여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집에 와서 메모리를 확인할 때면, 가슴이 떨렸다. 과연 사진이 어떻게 찍혔을까. 몇 장이나 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사진을 확인하면서 ‘어, 이건 노출이 좋네. 광원도 잘 찾았고’. 이렇게 실패를 하면서 사진 찍는 실력이 늘었다. 인물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 경험을 통해 이제는 딱 보면 조리개값, 셔터 스피드 등 머리 속에서 바로 정리한다. 이럴 때는 이런 효과를 적용하면 어떤 색상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 지금은 사진 찍는게 편하다. 그렇게 공부했다.

IT동아: 맞다. 사진을 찍고, 배운다는 것이 꼭 똑같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병진: 예전에는 조리개값, 셔터스피드를 조금씩 바꿔서 예시로 찍은 사진을 들고 다녔다. 이만큼 조여서 찍으면 이런 사진이 나왔구나. 정말 바보 같은 방법인데, 스스로, 그렇게 잘 찍기 바라며 노력했다. 자동모드(iA)로 찍은 사진의 데이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ISO, 조리개값, 셔터 스피드 등, 자동모드로 찍은 사진의 데이터는 기억 나지 않는다. 하지만, LCD를 가리고 수동모드로 찍은 사진의 데이터는 모두 다 기억난다. 내가 만든 독학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니콘 포토스쿨 때 이 방법을 수강자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사진을 배우는 정답이란 뜻이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더라. 쪼는 맛이 있었다. (웃음) 메모리 카드를 PC에 꽂고 사진을 넘기며 확인할 때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IT동아: 그것 참. (웃음) 그렇게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완전히 새카맣게 검은 사진이 찍히기도 했을텐데.

이병진: 심지어 DSLR 카메라 모드 다이얼에 적혀있는 P, A, S, M 등의 표시 중 M 빼고 다 칼로 지워버린 적도 있다. M만 놔뒀다. 아마 D5000 처음 나왔을 때로 기억난다. 니콘 관계자가 이걸 보고 “이 카메라 왜 이래?”라고 했을 때, “어, 그거 내가 지웠어”라고 말했다. 좋은 DSLR 카메라라도 이렇게 불편하게 써봐야 실력이 늘더라. 본인한테 맞는 기종과 본인에게 맞는 방법으로 사진을 찍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실 D4 같은 좋은 DSLR 카메라 보다 내 손에 익은 DSLR 카메라가 더 좋다.

DSLR 카메라의 스펙이 중요한가. 가격만 본다. 오직 가격만. 그러고 보니 요즘 니콘이 가격 정책을 이상하게 하는 것 같은데… (웃음) 농담이다. 나는 일반 사용자처럼 DSLR 카메라를 대하는 것 같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지 않을까.

그는 인터뷰를 나누는 도중, 자신의 카메라 가방을 열고 보여줬다.


이병진: 나는 사진가들의 가방을 만날 때마다 열어본다. 매그넘의 부회장 가방도 “까봐라”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사진의 대가라 불리는 사람은 무슨 카메라를 사용하는지 궁금했다. (웃음)내 가방을 보여주겠다. 일단, 라이카 필름 카메라와 28mm F2.8 렌즈의 똑딱이 필름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닌다. 그런데 이제 이 똑딱이 카메라는 더 이상 들고 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에 니콘이 선보인 쿨픽스A의 셋팅이 이 똑딱이 카메라와 거의 똑같다. 이거 참 좋다. 무슨 광고 같긴 한데. (웃음) 좋은 건 좋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IT동아: 참.. 재미있는 DSLR 사용법이고, 사진 촬영 기법이다. 여행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봤을 것 같다. 실제로도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보셨고. 그래도 어렵겠지만,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1명의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병진: 아, 사람. 1명의 사람이 있다. 내 아내다. (웃음) 음…. 1명을 꼽자면, 괌에서 만난 한 노인이 생각난다. 여행을 간 괌의 해안가 높은 절벽 위에서 D100으로 주변 풍경을 찍고 있을 때였다. 절벽 아래에서 머리가 다 벗겨지고, 돋보기 안경 같은 것을 코에 걸친 노인 한 분이 걸어 올라왔다. 노인의 목에는 겉이 다 벗겨져 속의 황동이 다 밖으로 나온 필름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햇빛에 비춰진 그 필름 카메라는 멀리서 봤을 때 마치 금메달 같았다.


당시 내가 들고 있던 카메라는 니콘 D100이었고, 줌 렌즈 2개 정도를 더 가지고 있었다. 노인은 내 카메라와 장비를 보더니 “당신은 부자인가? 내 생각에 당신은 부자가 맞다”라며, “부자가 아니라면, 당신은 사진작가인가?"라고 말했다. 당황한 나는 “한국에서 여행 온 연예인이다. 다만, 사진을 좋아해서 촬영을 하기 위해 여기 왔다”라고 했더니, 노인은 당신의 가방 속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넣은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다. 그 사진들을 본 순간 말을 못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은 모두 예술 작품이었다.

그리고 노인은 “내가 원하는 카메라 장비가 당신 가방 속에 다 들어있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이 카메라 하나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할 말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노인은 괌 및 전세계 관광청에서 홍보 사진을 찍던 사람이었다. 그 사건을 겪고 한국에 돌아와 가지고 있던 장비를 다 팔았다. 그 때부터 LCD를 덮고 수동모드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좋은 장비가 최고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만약 좋은 카메라를 구매할 생각이 있다면, 그만큼 더 열심히 사진을 찍어 볼 것을 권했다. 사진을 찍으며 장비 탓을 할 거면 처음부터 D4를 구매하란다. 그리고 “D4를 샀으면, 똑딱이 카메라보다 못한 사진을 찍지 말고, 더 연습하고, 더 공부해서 좋은 사진을 찍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DSLR 카메라는 광학기술이 발전해 만든 이성의 산물이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또는 사람을 찍을 때 감성을 담아 사진으로 남기지 않던가. LCD를 덮고 수동모드로 찍는 DSLR 카메라. 낯설지만, 좋은 선물을 하나 받은 기분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 포털 내 배포되는 기사는 사진과 기사 내용이 맞지 않을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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