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경제민주화 신호탄 아니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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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 대기업 편법증여 과세 요구

감사원이 10일 발표한 대기업들의 편법 증여 수법은 교묘하고 다양해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대기업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번 발표를 두고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신호탄이 올랐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수익 포기하고 총수 일가에 특혜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는 극장 내 매점을 직영으로 운영하다 2005년 4월 임대로 전환했다. 팝콘과 음료를 주로 파는 극장 매점은 독점인 데다 현금거래가 많고 원가가 매출액의 20%에 불과해 극장 측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롯데는 신격호 회장의 부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가 지분을 100% 보유한 유원실업과 수의계약을 맺고 영화관 29곳의 매점 운영권을 넘겨줬다.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주요 주주인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에도 영화관 18곳의 매점 운영권을 줬다. 매출액의 약 30%를 임대 수수료로 내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직영으로 운영하면 매출액의 60%가 이익으로 남는데 30%의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임대 계약을 맺은 것”이라며 “전형적인 일감 떼어주기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CGV는 이재현 CJ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씨가 2005년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하자 영화 상영 전후에 광고를 대행할 수 있는 권리를 몰아주면서 수수료도 깎아줬다. 이 씨가 낸 자본금 1억 원으로 시작한 이 기업은 창업 6년 만에 시가총액이 426억 원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감사원은 “해당 업체가 투자액의 40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반면 기존에 CJ의 극장 광고를 대행하던 업체는 매출이 급감해 대규모 영업 손실을 봤다”고 지적했다.

대선주조의 경우 푸르밀 신준호 회장이 주식 31만여 주를 추가로 취득할 기회를 포기하고 대신 손자 등 4명에게 자금을 빌려줘 해당 주식을 사도록 했다. 신 회장의 손자 등은 산업단지 지정, 생산공장 건축허가 등 개발사업 시행 직후 주식을 팔아 1000여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이명희 회장의 딸인 정유경 부사장이 주요 주주인 제빵업체에 백화점 내 매장을 제공하며 수수료를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정 부사장에게 86억 원의 이득을 안겼다. STX는 강덕수 회장과 두 딸이 75%의 지분을 가진 STX건설에 사원아파트 신축공사 등 공사물량을 몰아줬다.

○ 정부 부처 간 떠넘기기에 제도 유명무실

대기업들의 변칙 증여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2004년 ‘증여세 포괄주의’를 도입했다. 법에 열거된 상속·증여 행위만 과세 대상으로 삼던 관행을 벗어나 사실상 상속·증여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세금을 매기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제도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의 떠넘기기 속에 9년 동안 유명무실하게 운영됐다. 재정부는 ‘합리적 방법으로 증여가액 산정이 가능하다면 어떤 경우든 포괄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며 세부 시행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반면 국세청은 증여가액 산정 등을 법령에서 정해야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며 손을 놨다.

그 사이에 국세청은 현대차그룹, 롯데, CJ 등의 변칙 증여 행위를 적발했지만 “증여세 과세 대상인지 불분명하고 과세요건이 법에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 금액 산정이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감사원은 국세청장에게 △이번에 적발된 대기업 9곳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포괄주의에 따라 집행기준을 마련해 집행하라고 통보했다. 증여세 부과 시효는 15년이기 때문에 국세청이 감사원에서 지적한 2004년 이후 변칙 증여 행위에 대해 모두 과세할 경우 기업들은 수백억∼수천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

이날 거론된 대기업들은 당장 세금을 내라는 게 아닌 만큼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일부는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시스템통합(SI) 업종 특성상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소급해 거액의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임대료는 통상적인 수준이었으며 총수 일가여서 눈에 띈 것뿐”이라며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극장 매점은 3월부터 다시 직영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 측은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이번에 나온 개별 사례에 대해 언급하기는 어렵고, 감사원이 지적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법에 따라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감사원#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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