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사육제’ 작곡한 생상스… ‘80일간의 세계일주’ 쓴 쥘 베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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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

1876년 전화, 1879년 전구, 1885년 벤츠의 자동차….

19세기 후반은 기술문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며 인간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던 단계로 이끈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교향악의 황금시대이기도 합니다. 유럽과 미국의 명문 오케스트라 대다수가 이 시기에 창립됐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을 세우고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이 음악회장으로 몰려갔던 것입니다.

이 시대 연주된 음악작품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당시는 바그너와 베르디, 브람스와 브루크너, 차이콥스키와 러시아 5인조의 활동기였습니다. 자연과 서정, 추억과 정열을, 아니면 신화와 전설, 영웅들의 무용담을 음악극이나 대편성 관현악곡에 쏟아 넣었습니다. 신문명이나 공학기술, 인류의 발전 같은 시대정신은 엿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꼭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사진)의 작품에서 우리는 과학과 진보의 당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생상스라고? ‘동물의 사육제’ 작곡가?” 그렇습니다. 작곡가 자신의 말대로 ‘심심풀이로 쓴’ 작품이 그의 대표작 취급을 받는 것은 씁쓸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도 생상스의 중요한 특징을 드러냅니다. 거북, 코끼리, 캥거루, 화석…. 지식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시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박물지적, 만국박람회적’ 시대 분위기를 반영 또는 풍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원제공 낙소스>
<음원제공 낙소스>
음악 말고 생상스의 평생을 관통한 관심사는 천문학과 중동(아랍)이었습니다. 프랑스 천문학회 정회원이었던 그는 천체망원경을 직접 제작했고 신기루 같은 대기현상에 대해 강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또 그는 달 표면처럼 거친 건조지대의 풍경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오페라 중 대표작은 팔레스타인이 무대인 ‘삼손과 델릴라’이며, 피아노협주곡 5번의 제목은 ‘이집트풍’ 입니다. 친근한 문명세계가 아니라 낯선 것, 모험, 신비의 세계가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 그를 저는 ‘음악계의 쥘 베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 리’를 쓴 베른이 생상스와 만났다는 기록은 없지만, 두 사람은 동일한 시대정신을 소유했습니다.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김대진 지휘 수원시향이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을 연주합니다. 올해 교향악 축제 마지막 날 순서로,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이 어울리는 장려한 작품입니다. 황량한 사막에 넘쳐흐르는 신비의 샘물과 같은 화음을, 밤하늘에 오색 빛 찬란한 레이저를 쏘는 것 같은 장려한 음향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classicgam.egloos.com/201329

유윤종 gustav@donga.com
#생상스#베른#김대진#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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